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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홍보라인 낯 뜨거운 집안싸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11일 오전 서울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자신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기자회견을 한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벌어진 ‘성추행 의혹’으로 전격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과 이남기 홍보수석이 11일 윤 전 대변인의 ‘중도 귀국’ 논란을 놓고 상반된 주장을 하며 정면으로 충돌했다. 성추행 의혹 사건이 청와대와 윤 전 대변인 간의 원색적인 진실 공방으로 확대되고 사건 은폐·축소 논란까지 벌어져 청와대 홍보라인과 운영시스템의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전 대변인은 11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8일 미국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직후 본인의 결정으로 중도 귀국했다는 청와대의 입장을 반박했다. 그는 “8일 조찬 행사 직후 이 수석이 전화해 영빈관에서 만났는데, 이 수석이 ‘재수가 없게 됐다. 성희롱에 대해선 변명해 봐야 납득이 되지 않으니 대통령 방미에 누가 되지 않도록 빨리 귀국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윤 전 대변인은 “내가 ‘잘못이 없는데 왜 일정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해명을 해도 이 자리에서 하겠다’고 했지만, 이 수석이 ‘1시 반 비행기를 예약해 놨으니 호텔에서 짐을 찾아 나가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수석이 내 직책상 상관이라 그 지시를 받고 내 카드로 비행기표를 사 귀국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남기 홍보수석은 이를 재반박했다. 이 수석은 이날 오후 5시40분 청와대 춘추관에서 “윤 전 대변인에게 귀국을 종용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 7시간 뒤 기자들을 만나 “(성추행 의혹에) 굉장히 쇼크를 먹은 상태였다. 정황상 100% 기억나진 않지만 귀국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한 건 없다”고 밝혔다. 이어 “1시 반 비행기를 예약해 놨다고 말한 기억도 없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8일 아침 윤 전 대변인을 영빈관 앞에서 5~10분가량 만나 (성추행 의혹 사건이) 사실이냐고 물었고 (오전 10시30분으로 예정된) 박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 참석이 급해 (이 사건을 담당해온) 전광삼 청와대 선임행정관과 상의하라고만 말하고 자리를 떴다”고 주장했다. 윤 전 대변인에게 ‘재수가 없다. 성희롱은 납득이 되지 않으니 귀국하라’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수석과 배석한 전 선임행정관도 “윤 전 대변인에게 고발당했으니 조사받는 게 불가피해 알아서 결정하라는 취지로 말했지 귀국하라고 종용한 적이 없으며 귀국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지 않았다”며 윤 전 대변인의 주장을 부인했다.

이 수석은 “이번 사건의 본질은 워싱턴에서 (윤 전 대변인이) 불명예스럽고 고위공직자로서 굉장히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했다는 것으로, 그게 경질의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윤 전 비서관의 기자회견 내용을 강도높게 비판하는 발언이다. 전 선임행정관도 “(윤 전 대변인이)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 있으면 당장 미국 가서 조사받으면 된다. 조기 귀국이니 (귀국) 종용이니 하는 논란은 바로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수석은 ‘윤 전 대변인 외에도 청와대에서 추가로 책임지는 인사가 나와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책임을 질 상황이 있다면 나도 책임을 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조사한 내용을 알려 달라는 질문에 대해선 “그건 잘 모르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한편 윤 전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여자 가이드, 운전기사와 30분간 술을 마시고 나오면서 가이드의 허리를 한 차례 치며 ‘미국에서 열심히 살고 성공해’라고 말한 게 전부”라며 성추행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여야는 11일 윤 전 대변인의 회견 직후 그를 비난하는 논평을 냈다.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구구절절한 회견 내용이 과연 국민을 납득하게 할 만한 것인지 강한 의문이 남는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구차한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한, 듣기조차 민망한 한심한 입장 표명”이라면서 “국민의 반대를 무시하고 ‘오기 인사’를 한 대통령도 큰 책임이 있는 당사자”라고 비판했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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