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사기에서 골라낸 명구 130편 두고두고 거울로 삼을 만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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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를 세우는 옛 문장들
김영수 지음, 생각연구소
544쪽, 1만8000원

제목처럼 문장교본이기도 하고, 삶의 지혜를 담은 자기계발서로도 읽힌다. 일화 가득한 역사책이자 맛깔스런 에세이이기도 하다. 인걸들이 종횡하며 온갖 삶의 진수를 보여주는, 동양 고전 『사기』에서 길어낸 명구(名句)이어서다.

 본기(本紀)·세가(世家)·열전(列傳)·서(書)·표(表)로 구성된 사마천의 『사기』는 동양 역사 서술의 전범이 되었던 명저다. 그러나 이를 전부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완역판이 4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 연구자가 아니라면 굳이 완독할 이유도 없다. 『사기』를 읽는 여러 방법이 필요하고, 존재하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지은이는 든든하다. 이미 간신론, 리더십, 경영학은 물론 청소년· 아동용까지 다양한 『사기』 변주를 선보인,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사기』 전문가다.

 이번엔 130편의 고사성어· 명구를 골라 풀었다. 단순한 뜻풀이가 아니다. 배경이 된 일화를 소개하고 의미를 저울질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을 보자. 말 그대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이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

 유방이 한신에게 자신은 몇 명의 병사를 지휘할 재목인지 물었다. 한신이 10만 명 정도라 답하자 은근히 기분이 상한 유방. 한신에게 얼마나 지휘할 수 있는지 물었다. 이에 한신은 자신은 병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답했다. 다다익선이 유래한 일화다. 이쯤만 해도 어휘를 늘릴 수 있고, 역사 지식을 보탤 수 있다.

 여기에 지은이는 이 이야기에서 한신의 교만함을 지적하고, 이것이 결국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불렀다고 들려준다. 토끼가 없어지니 사냥개를 삶아 먹어버린다는, 쓸모가 없어진 수하는 야박하게 버려진다는 세상 원리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이 곳곳에 있다. 농민 반란을 일으켜 천하를 통일한 진 나라의 멸망을 재촉한 진승 부분을 보자. 진승은 반란을 일으키며 “왕이나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어디 따로 있더란 말인가?(王侯將相寧有種乎)” 라고 명분을 세웠다.

 이와 관련 지은이는 “기득권 세력은 체제와 법이 공평과 평등을 보장한다고 말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세상은 전혀 평등해지지 않았다. 기득권 세력의 관점으로 만든 체제와 법이 공평하고 평등할 리 있겠는가. 법이나 제도는 인간의 평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공직자의 기본자세를 일러주는 거관수법(居官守法), 부귀만 좇는 지식인의 최후를 경계한 동문황견(東門黃犬) 등, 여느 책에서 만나기 힘든 일화와 교훈을 담은 책은 장삼이사는 물론 오피니언 리더에게도 재미와 교훈을 준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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