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무너진 4년 전통|연두교서폐지와 앞으로의 국회운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제3공화국에서 세워졌던 의회정치운영의 한전통이 깨어졌다. 64년1월6대 국회초부터 대통령이 연두국회에 나와 발표해오던 연두교서는 4년이란 짧은 역사를 남긴 채 올해부터 자취를 감추게되었다.
청와대당국은 19일 돌연 『금년부터 대통령의 연두교서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신범식대변인은 연두교서폐지의 이유로 ①예산교서와의 중복 ②경화된 여·야 관계와 국회사정을 들었다.
지난 15일 박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그의 시정구상을 밝혔을 때, 야당가에서는 이기자회견이연두교서발표에대신하는것이아니겠느냐고보아왔던것.
박대통령은 이 기자회견에서 의회의 공전을 개탄하면서 『우리정치인들은 아직 철이 덜 들고 지각이 없다』고 말한바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미루어보아 박대통령의 연두교서폐지는 예산교서와의 중복보다 독주와 극한투쟁의 난장판인 국회사정에 더 큰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 사실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청와대당국의 발표가 연두교서낭독 등 연두국회의 의정일정을 협의하던 여·야 총무회담이 결렬된 후에 있었다는 점이 이를 더욱 뒷받침해주고 있다.
청와대당국의 연두교서폐지발표는 신민당을 적지 않게 자극했다. 이 발표가 나오자 신민당은 『의회에 대한 중대한 불신』이라고 규정하고 『여·야합의의정서에 의한 특조위법입법과 보장입법, 그리고「28변칙」사태에 대한 야당의 책임추궁이 두려워 모처럼 전통으로 세워진 국회운영의 관례를 스스로 깨뜨렸으며 책임정치의 포기』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의회의 훌륭한 하나의 관례가 깨어진 것은 그 이유와 책임이 어디에 있든 간에 정치풍토개선에 흠점을 남겼다는 점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연두교서폐지는 공화당정부의 국회경시풍조에 기인한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박대통령은 앞으로 매년 9월초 정기국회에서 다음해 예산안을 내놓을 때 발표하는 예산교서 (지금까지 총리대독) 와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새해시정을 밝히게 되었으며 대통령이 국회에 출석하는 기회는 없어지는 것 같다.
청와대당국의 연두교서폐지 발표는 공화당이 시도하던 연두국회 소집을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18일부터 시작된 여·야 총무회담에서 공화당은 연두국회를 여·야가 공동으로 소집, 조용한 가운데 박대통령의 연두교서를 듣기를 희망했지만 신민당은 먼저 「28변칙」사태에 대한 의장단의 인책보장, 부정조사특위, 보장입법특위의 활동선행을 요구하고 나서 결국 결렬되고 말았다. 연두교서를 듣기 위해 임시국회를 소집하려던 공화당은 연두교서 발표가 취소되자 최소한 2월13일까지 임시국회의 단독소집을 않을 방침을 세웠다. 이렇게 되고보면 선거부정조사나 선거관계졔법개정 등 여·야합의의정서가 순조롭게 실천되리라는 보장이 희박해진다.
공화당이 앞으로 특별한 성의를 보이지 않는 한 신민당으로부터 『공화당은 당초부터 의정서를 실천할 생각이 없었다』는 의구심을 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20일 보장입법특위의 활동문제를 다루기 위한 여·야 총무회담이 열리기는 했으나 오는 2윌1일과8일로 임기가 끝나는 각 시도 및 지역구선관위원의 추천과 위촉의 보류를 요청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국회본회의소집이 선행되어야한다는공화당측반론으로그실현이어렵게되었다.
신민당일각에서는 선거관리사무의 공백을 피하고 선거관계법개정을 이룩하기 위해 신축성있는 국회대책을 세워야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나와있다. 국회운영과 보장입법문제에 대한 공화당의 강경책은 바로 이 신민당의 내부적인 후퇴를 계산에 넣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선관위원 추천보류문제 때문에 공화·신민 양당이 국회소집문제에 대한 이견을 조정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관측들이다.
이 조정이 없는 한 국회의 장기공백은 불가피하며 공화당이 단독으로2월중에 소집하는 임시국회는 또다시 독주와 극한투쟁의 악순환이 반복될 공산이 크다. 이는 결과적으로 의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정치적 무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빚어 낼 지도 모른다.

<이태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