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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가난한 제자에 무한한 배려와 사랑 베푼 체르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1면

체르니의 아버지는 오르간 연주자이자 오보에 연주자였으며 피아노 교사, 피아노 수리 등 음악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했고 체르니의 음악교육은 그런 아버지로부터 시작됐다. 음악을 기억하는 능력이 뛰어났던 체르니는 문학과 언어에 있어서도 또래의 아이들보다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무료로 음악을 배우던 가난한 제자들로부터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배웠으니 이후에 그가 가난하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을 제자로 받아들여 무료로 레슨을 한 것은 아버지로부터의 대물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1823년 체르니는 그의 스승 베토벤을 어렵게 설득해 12살이었던 리스트를 데려갔다. 리스트가 자신이 작곡한 소품 한 곡을 연주하자 베토벤은 바흐의 푸가를 주문했고 리스트는 바흐 평균율 피아노곡집에서 C단조 푸가를 연주했다.

베토벤은 즉석에서 다른 음계로 바꾸어 연주할 것을 요구했고 리스트는 훌륭하게 연주를 마쳤다. 베토벤은 리스트의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입을 맞추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리스트는 훗날 “이 사건은 나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나의 예술가로서의 경력에 수호신 역할을 했다” 고 고백한 바 있다.

체르니의 제자 리스트와 레세티츠키는 음악사상 가장 큰 피아노 인맥을 형성했으니 그 뿌리는 체르니와 그의 스승이었던 베토벤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로제탈, 자우어, 달베르, 라몬트, 토만은 물론 한스 폰 뷜로 역시 리스트의 계보에 속한다 할 수 있는데 뷜로는 하인리히 발트를, 발트는 아르투르 루빈스타인과 빌헬름 켐프라는 20세기의 거장을 키워냈다. 한편 레세티츠키는 폴란드 공화국의 초대국왕이 된 파데레프스키를 비롯해 비트겐슈타인, 모이세비치, 호로초프스키, 브라일로프스키와 베토벤 전문가로 평가 받는 아르투르 슈나벨로 그 계보를 이어왔다. 오늘날 음악 연주에 있어서 독주자들에게는 암보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리스트의 모습이 담긴 그림에서 그는 늘 보면대가 아닌 위쪽 하늘을 바라보는 포즈가 많은 것으로 미루어볼 때 악보를 보지 않고 암보로 연주하는 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과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쇼팽은 제자가 자신의 녹턴 한 곡을 암보로 연주하려 하자 화를 냈다고 한다. 멘델스존 또한 스스로 뛰어난 암보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악보 없이 연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체르니 역시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로 10대에 이미 당대의 대곡을 암보로 연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은 암보로 연주를 하면 악보에 적힌 상세한 음악적 지시를 주목하지 않게 된다며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이 같은 견해 차이는 체르니와 베토벤의 사제지간을 잠시 갈라놓기도 했다.

뛰어난 암보 능력으로 얼마든지 자신의 연주 능력을 과시할 수 있었음에도 후학을 가르칠 연습곡 작곡에 몰두했던 체르니. 우리가 그로부터 배워야 할 미덕은 가난한 자에 대한 무한한 배려와 제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그리고 겸손함이다.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503

cafe.daum.net/the Classic

글=김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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