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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기 쉬운 재료 단순하게 조리 ··· 북유럽의 맛은 자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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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음식 맛의 핵심은 신선한 재료다. 노르웨이 오슬로 그랜드호텔의 `새우 오픈 샌드위치`. 데친 새우가 빵 위에 수북이 쌓여 있다. [사진 그랜드 호텔]

북유럽은 최근 세계 미식계가 가장 주목하는 지역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영국 잡지 ‘레스토랑’ 선정 ‘2013 세계 최고 레스토랑 50선’에서 2위를 차지한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지난해까지 3년 연속 1위를 기록했으나 올해 순위에선 지난 2월 발생한 식중독 사고 때문에 2위로 떨어졌다)가 있다. 하지만 식당 한 곳의 명성만으로 북유럽이 관심 지역이 됐다고 보긴 어렵다.

‘북유럽 스타일 음식’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을 들으러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미슐랭 1스타 식당 ‘오로(Oro)’를 운영하고 있는 테리에 네스(41)를 찾아갔다.

그는 1999년 ‘요리 올림픽’으로 꼽히는 국제요리대회 ‘보퀴즈 도르((Bocuse d’Or)’에서 챔피언 자리에 올라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요리사다. 네스의 답은 명료했다. ▶자연친화적이고 ▶단순하다는 것. 북유럽 스타일 디자인의 특징과 일맥상통했다.

먼 곳서 구한 재료로는 맛 못내

“노르웨이 식탁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재료는 해산물입니다. 우리 식당 메뉴의 80%도 해산물 요리지요. 왜냐고요? 노르웨이에선 해산물을 구하기가 제일 쉽거든요.”

1.노르웨이 항구 도시 스타방에르의 어시장에서 파는 `생선 수프` [사진 노르웨이관광청]
2,3. 오슬로 항구에 있는 식당 `아케르 브리게(Aker Brygge)`의 음식들. `새우 구이 샐러드` 와 `대구 숯불 구이` [사진 노르웨이관광청]

인터뷰하는 동안 테리에 네스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로컬(local)’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먼 곳에서 가져온 식재료는 신선도를 유지하기 어렵고 신선하지 못한 재료로는 아무리 솜씨를 발휘해봐야 맛이 안 난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연안 북대서양은 고등어·연어·대구·청어·광어·새우·게·홍합·굴 등 각종 해산물의 황금어장이다. 네스는 “노르웨이 연안 바닷물이 깨끗하고 수온이 낮아 이곳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은 육즙이 풍부하고 조직이 탄탄하다”고 말했다. 차가운 물에서 생선의 살이 천천히 차오르기 때문이란다. 노르웨이의 해산물은 연간 수출액이 9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생산량이 많다. 지난해 한국에 수입된 노르웨이 해산물도 약 880억원어치에 달했다. 하지만 네스는 ‘장거리 여행’을 거친 노르웨이 해산물이 고향에서만큼 맛을 내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각자 자기 지역에서 많이 나는 자신의 ‘로컬푸드’를 최대한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성’만큼이나 ‘제철’도 네스가 신경 쓰는 항목이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기 위해 그가 시연한 요리는 ‘대구 팬프라이’였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흔한 생선인 연어는 여름∼가을이 제철이어서 겨울∼봄이 제철인 대구에게 밀렸다. 네스는 “쉽게 구하는 재료가 가장 좋다는 걸 잊지 마라”고 강조했다.

요리 단계 줄여야 본연의 맛 살아

네스가 둘째로 꼽은 북유럽 요리의 특징은 ‘단순(simple)’이다. “조리 과정이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직접 요리 과정을 보여준 ‘대구 팬프라이’도 정말 만들기 쉬운 음식이었다. 소금을 뿌려 절여둔 대구를 프라이팬에 올려 지진 뒤 크림 소스를 뿌리면 끝이었다. 별다른 재료나 기술이 보이지 않았다. 미슐랭 스타 요리사의 비법은 과연 어디에서 발휘된단 말인가. 네스는 “식재료 본연의 제맛을 내기 위해선 최대한 요리 단계를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

미슐랭 1스타 식당 `오로`의 셰프 테리에 네스가 `대구 팬프라이` 요리를 들고 있다 [사진 노르웨이관광청]

오픈 샌드위치나 납작빵·생선수프 등 북유럽 지역 대표 음식들도 하나같이 조리 과정이 간단했다. 특히 빵 위에 여러 가지 재료를 얹어 뚜껑을 덮지 않고 먹는 오픈 샌드위치는 재료 손질이 요리 과정의 전부라 봐도 무방한 요리다. 빵에 마요네즈나 버터를 바른 뒤 그 위에 재료를 얹기만 하면 되는데, 새우 샌드위치의 경우 살짝 데친 새우의 껍질을 까서 빵 위에 수북이 올리면 완성이다. 게살 샌드위치도 발라낸 게살에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고 빵 위에 얹어 담백한 맛을 냈다. 바이킹의 주식이었다는 납작빵은 재료가 곡물가루(밀가루나 귀리가루·보릿가루·콩가루 등을 하나만 써도 되고 섞어 써도 된다)와 물·소금, 이렇게 세 가지뿐이다. 발효 과정도 필요 없다. 반죽한 뒤 납작하게 밀어 구워 먹으면 된다.

요리 과정이 간단하니 주방 설비도 복잡할 이유가 없었다. 미슐랭 1스타 식당 ‘오로’의 주방도 소박했다. 물 나오는 곳, 불 나오는 곳, 재료 손질하는 곳이 다였다.

“맛은 자연이 내는 거죠.”

네스의 믿음엔 흔들림이 없었다. 그 자신감이 그의 주방에 단순미를 더하는 듯했다.

오슬로 `마탈렌`의 식재료 상점. [사진 노르웨이관광청]

장도 보고 맛도 보는 복합공간 오슬로 ‘마탈렌’
먹거리는 단순히 먹기만 하는 게 아니다. 볼거리·즐길거리 등으로 다양하게 그 효용이 확장된다. 그 현장을 노르웨이 오슬로 아케르셀바강 서쪽에 있는 음식 복합공간 ‘마탈렌(Mathallen)’에서 볼 수 있었다. 마탈렌은 생선·육류·채소·차·향신료 등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을 파는 상점·식당 30여 개, 그리고 음식강좌·요리경연대회 등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 등이 모여있는 곳이다. 방치돼 있던 폐공장을 부동산 개발회사 ‘아스펠린 램(Aspelin Ramm)’에서 매입, 리모델링해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다.

마탈렌은 영국 런던의 ‘보로 마켓(Borough Market)’과 스웨덴 스톡홀름의 ‘외스테르말름 시장(stermalms Saluhall)’ 등 유럽의 유서 깊은 재래시장들을 모델로 삼아 ‘가장 신선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곳’을 표방하고 있다. 문을 연 지 6개월밖에 안 됐지만 마탈렌은 오슬로 시민들에게 장도 보고 양질의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방문객 수는 매주 2만∼3만 명 선. 오슬로 시 전체 인구가 50만 명이란 걸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다.

마탈렌은 지역 발전에도 활력소가 되고 있다. 마탈렌이 위치한 불칸 지역은 과거 공업단지였다가 최근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최근 마탈렌을 찾는 젊은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 일대는 오후 10시 해가 진 이후에도 사람들이 북적이는 번화한 동네로 떠올랐다. 노르웨이의 관광 진흥 업무를 맡고 있는 국영 회사 ‘이노베이션 노르웨이’의 투리드 하겐 수석고문은 “오슬로 시민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 중에서도 ‘마탈렌에 가고 싶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오슬로(노르웨이)=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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