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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일 벌이지 못하게" 육·해·공 3각 무력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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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이 한반도 주변에 전폭기를 추가 배치하는 등 군사력 증강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배치되는 전력(戰力)이 내용 면에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미 국방부는 B-52와 B-1 장거리 폭격기 24대에 대해 태평양 서부지역으로 이동 준비 명령을 내렸다.

B-1 폭격기는 인공위성으로 유도하는 1t짜리 폭탄 24개를 탑재할 수 있고, B-52 폭격기도 31t 가량의 폭탄과 미사일을 운반하는 미 공군력의 핵심이다. 이 전폭기들이 태평양의 괌에 배치되면 한반도에서 전쟁상황이 발생할 경우 중간 급유 없이 곧바로 북한 지역으로 출동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미 국방부가 한국에서 전출 대기 중이던 미군 2천9백명에게 6개월간 근무연장을 명령한 것이나 토머스 파고 미 태평양 군사령관이 공군 요원 등 2천명의 병력 증강을 요청한 것도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이다.

미국은 또 일본에 배치한 항모 키티호크가 걸프 지역으로 이동하면 또 다른 항모인 칼 빈슨을 동해상으로 이동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북한 해안에서 약 7백마일(1천1백20㎞) 이상 떨어진 곳에 대기할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미 국방부는 "이라크전이 터질 경우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우리가 이라크전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것을 이용해 북한이 뭔가 일을 벌일 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서 목표는 이라크일 뿐 북한이 아님을 강조했다. USA 투데이도 "한반도 주변지역에 공군 및 해군력을 증강하려는 것은 북한의 추가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군사전문가들은 만일 이라크전이 터지면 미국이 이라크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북한은 열흘 이내에 미사일 실험을 재개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또 북한이 핵개발을 급속하게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북한은 영변에 보관 중이던 폐연료봉을 외부로 옮기기 시작했다고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의 이런 움직임에 쐐기를 박기 위해 일종의 무력시위를 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항모가 동해상에 배치되고 군사력이 증강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재개하고, 핵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군사력 증강 배치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3일 정례 브리핑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북한 문제가 외교적인 수단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무력사용을 포함한 비상계획들을 갖고 있고 그걸 항상 실행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도 4일 "외교적 해결 운운은 공식적 언급일 뿐"이라면서 북핵 사태가 계속 악화되면 부시 대통령이 폭격 등 군사적 선택을 하게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번 군사력 증강 조치를 통해 이라크전쟁이 끝나고 나면 다음 차례는 북한이 될 것임을 암시했다.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김종혁 기자 <kimc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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