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통역 없이 오바마와 산책·회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7일(현지시간) 낮 12시 백악관 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예고도 없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잠시 산책하실까요”라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백악관 중앙 관저 왼쪽 뒤편에 자리한 로즈가든 복도를 10여 분간 걸었다. 첫 만남에서 통역도 없이 두 사람만의 대화를 나눈 것은 파격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 가족 얘기 등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시간 뒤 공동 기자회견장에 선 박 대통령은 동시통역사의 말을 전달해주는 장치인 리시버를 귀에 꽂지 않고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통역 없이 듣고 이해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영어실력이 화제다. 어릴 때 미국인 교사에게 영어를 배운 박 대통령은 정치권에 입문한 뒤에도 원어민 교수에게 영어를 익혔다고 한다. 외국인들은 박 대통령의 영어 에 대해 “미국의 대학 졸업자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박 대통령은 “불어·스페인어·중국어를 할 수 있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박 대통령이 외국어에 힘을 쏟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박 대통령을 오랜 기간 지켜봐온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시절 ‘정트리오’의 인터뷰 기사를 본 이후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정명훈씨 등 삼남매로 이뤄진 정트리오는 경화씨가 1967년 미국 리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들의 뒤에는 어머니 이원숙(2011년 작고) 여사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다. 정트리오는 70년대에 한 언론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꿈을 이뤄 기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과거 사석에서 “어머니(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신(1974년) 이후 정트리오의 인터뷰를 읽고 ‘어머니께서 강조한 게 무엇인가’ 생각해 봤는데, ‘외국어를 잘해야 한다’고 하신 게 떠올라 그때부터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 트리오가 박 대통령에게 동기를 부여해 준 셈이다.

허진 기자

[관계기사]
▶ '미셸엔 韓요리책' 朴대통령·오바마, 주고 받은 선물은
▶ '한국서 온 철의 여인' 美언론서 붙인 朴대통령 별명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