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눈사람' 명대사에 네티즌 열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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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 사진 속에 경이씨 넣어요. 내 눈 속에도, 내 머리 속에도, 종양 옆에도."

"경이씨 만나기 전엔 죽는 게 무서웠는데, 경이씨 만나고 나선 남자로 못 살까봐 무서워요." (MBC '네 멋대로 해라' 중)

지난해 시청률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드라마는 '태조 왕건''야인시대''인어아가씨'다.

그러나 MBC '네 멋대로 해라'는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매니어 층을 몰고 다니며 화제를 뿌렸다. 그 가장 큰 요인은 대사의 힘이었다. 당시 방송사 홈페이지에는 6천건이 넘는 '명장면 명대사'가 올라오고, 방송작가 인정옥씨의 팬클럽이 생기기도 했다.

이에 앞서 1998년 방영됐던 KBS '거짓말' 역시 폐부를 건드리는 대사로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사랑을 하면서 강한 사람은 없어. 사랑을 하면 모두가 약자야. 상대에게 연연하게 되니까. 그리워하게 되니까. 혼자서는 도저히 버텨지지 않으니까. 우린 모두 약자야."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거야. 길가다 교통사고처럼 아무랑이나 부딪칠 수 있는 게 사랑이야. 사고나는데 유부남이, 할아버지가, 홀아비가 무슨 상관이 돼. 나면 나는 거지."('거짓말' 중)

그리고 2003년 MBC '눈사람'(사진)이 이 대열에 가세할 기세다. 이 드라마는 '형부와 처제의 사랑'이라는 금지된 사랑을 주옥 같은 대사로 녹여 낸다. 이런 이유로 벌써부터 매니어층이 형성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방송사 홈페이지에는 "대사 하나 하나가 소름 돋을 정도로 슬픔을 자아낸다"는 등의 의견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명장면 명대사 게시판을 만들어 달라는 의견도 많다.

"가슴 속에 담아둔 사람이 있거든. 가슴 속에 담아두고 보고 싶을 때 꺼내 보고 그랬거든. (중략) 힘들어서 사람들한테 자랑도 하고 그러고 싶은데, 그러면 눈사람처럼 녹아버릴까 봐 겁이 나.녹아서 없어지면 다시 꺼내 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잖아."

"언닌 내 눈물 다 받아주느라 울고 싶어도 못 울어요. 그래서 우리 언니 가슴 속엔 아마 눈물이 오아시스처럼 고여 있을 거예요"('눈사람'중)

'눈사람'을 쓰고 있는 김도우 작가는 "개성 있는 인물들의 감정이 흐트러지면 안되기 때문에 대사를 고르는 작업은 쉽지 않다"며 "대사가 주목받는 건 기쁜 일이지만 그보다 전체적인 구성을 더 사랑해 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KBS '드라마시티'와 SBS '남과 여' 등을 써 왔으며 미니시리즈는 첫 집필이다.

◇앞으로 나올 대사 하나="가라, 그 사람한테. 사람들이 돌 던지면 나 불러. 행주치마에 다 받아내서 조그만 성을 쌓아줄게. 부실시공 안 할 테니까 그 성에서 살아, 둘이서만."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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