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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민 축구단, 성적이 꼴찌에서 1~4등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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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달 28일 열린 FC 서울과 강원 FC의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경기. 서울은 후반 34분까지 0-2로 지고 있다가 8분 동안 3골을 몰아쳐 3-2 역전승을 거뒀다. 그런데 여기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당시 도민구단 강원은 4월 선수단 임금이 체불돼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었다. 경기를 지켜본 한 축구인은 “회사원이 월급 자주 밀리면 일할 맛 나겠나?”라며 허망하게 역전패 당한 강원의 입장을 대변했다.

 경남-대전-강원-대구. K리그 클래식 시·도민구단은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순위표 끝자락인 11~14위에 머물고 있다. 성적도 구단 운영도 하위권이다. 임금 체불, 낙하산 인사 횡행, 컨트롤 타워 부재. 한국 프로축구 시·도민구단들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강원은 4월 선수단 월급 8억원을 제 날짜에 지급하지 못했다. 월급날인 4월 25일을 훌쩍 지나 5월 7일에 겨우 지급했다. 강원을 떠난 A선수는 “월급도 밀리고 미래가 없어 팀을 나왔다”고 고백했다. 현직 강원 선수 B는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 포기하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장탄식을 내뱉었다. 강원은 올 시즌도 메인 스폰서인 하이원만 바라보고 있다. 강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인천과 경남 등도 임금을 체불했다.

 낙하산 인사도 횡행한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등록 선수는 총 515명으로, 구단별 평균 36.7명이다. 그런데 선수단 규모 1, 2위는 재정이 넉넉지 않은 시·도민구단이다. 대전(47명)이 1위, 강원(46명)이 2위다. 기업구단 포항과 울산, 부산(이상 32명)이 몸집 줄이기에 나선 것과 대조적이다.

 축구 관계자들은 “시·도민구단 고위층이 선수 선발 쿼터를 갖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2~3명 정도 낙하산으로 꽂아 넣는 경우가 많다”며 “대학 기여입학제처럼 7000만원 정도 내면 축구단에 입단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감독들로서는 황당하지만,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으니 벙어리 냉가슴이다”고 말했다.

 행정 리더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강원은 아직도 사장을 구하지 못했다. 지난해 남종현 전 사장이 떠난 뒤 공석이다. 인천을 제외한 시·도민구단도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부 구단의 대표이사는 출전선수 명단까지 간섭하는 등 아마추어적인 행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의 안일한 대처도 문제다. 프로연맹은 지난해 월급이 밀린 인천 측에 “외부에 월급이 밀린 사실이 알려지지 않게 조심해 달라”고 당부했다. 인천도 “알려져 봤자 좋은 게 없다”며 동의했다. 경고도, 징계도 없었다.

 유럽 축구의 경우는 다르다. 월급이 밀리면 구단이 징계를 받는다. 지난해 여름까지 전체 선수 주급의 40%를 못 줬던 말라가(스페인)는 2017년까지 한 차례 유럽대항전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재정에 문제가 있는 팀의 승점을 깎는다. 포츠머스는 2010년 재정 위기로 승점 9점을 삭감당하고 2부리그로 강등됐다.

 2009년 유럽축구연맹(UEFA)에 가입된 660개 구단이 총 12억 유로(약 1조7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UEFA는 위기를 느끼고 2011년 FFP(Financial Fair Play·재정적 페어플레이) 제도를 만들었다. 구단의 지출이 수입보다 많아서는 안 되는 게 핵심이다. 방만한 경영을 하는 구단에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에는 연맹과 구단이 재정난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시·도민구단의 한 관계자는 “월급이 밀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선수들의 사기에 영향을 준다”고 변명했다. 반면 월급이 밀린 A선수는 “선수들 사이에서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솔직히 경기에 의욕도 안 생긴다”고 반박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권오갑 프로축구연맹 총재 체제로 새 출발을 한 한국 축구의 어두운 뒷골목이다.

김환·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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