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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스피릿의 부활 6년 만에 확 달라진 무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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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호 24면

“예수여, 당신은 누구입니까? 알 수 없어요. 대답해줘요!” 누구보다 예수를 사랑했지만 끝내 그를 이해할 수 없었던 유다의 절규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하 ‘지저스’)’가 6년 만에 확 달라진 모습으로 다시 찾아왔다. 뮤지컬의 살아 있는 전설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 콤비가 이 시대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이유는 음악도 명불허전이지만 대중의 가려운 곳을 콕 집어 긁어주는 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비기독교인은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인이라도 감히 입 밖으로 낼 순 없지만 인간적으로 한 번쯤 품어봤을 법한 의문이 있다. 왜 예수는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 유다의 배반을 막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위해서라면, 그 희생양으로 낙점되어 돈 몇 푼에 예수를 팔아 넘긴 파렴치한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된 가엾은 유다는 꼴이 뭔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4월 26일~6월 9일 샤롯데씨어터

뮤지컬 ‘지저스’는 이 소심한 의문을 소리 높여 외침으로써 대중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속 시원한 무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는 심정이랄까. ‘지저스’는 웨버-라이스 콤비가 20대 초반이던 1971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최초의 록 뮤지컬로, 이른바 40년 역사의 고전이다. 어렵고 따분한 성경을 대중의 공감대 수준으로 요리하는 이들의 솜씨가 새삼 놀랍다.

얼마 전 한국에 첫선을 보인 두 사람의 첫 합작품 ‘요셉 어메이징’에서 구약성서의 요셉 이야기를 교묘히 종교색만 걷어내 인류 최초 훈남의 고난 극복 성공스토리로 탈바꿈시키더니, 뒤이은 ‘지저스’에서는 예수가 죽기 직전 7일간의 행적을 연약한 인간 유다의 시선으로 되짚었다. 신약성서의 주인공 예수의 죽음을 모든 신비와 종교적 금기를 깨고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림으로써 뮤지컬 사상 최고의 신드롬을 일으킨 것이다.

하늘의 계시 혹은 각본에 따라 진정한 수퍼스타가 되기 위해 예수가 죽었다 살아나야 하고, 그 과정의 도구가 된 유다는 졸지에 역사의 배신자로 영원히 저주 받을 이름이 돼버렸다는 해석은 종교적으로 불경스러울지 몰라도 너무도 인간적인 푸념이기에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음직하다.

‘유다의 변명’이란 파격적 내러티브를 지탱하는 것은 고막이 찢어질 듯 강렬한 록뮤직이다. 1960~70년대 기성질서에 대한 저항과 비판으로 점철된 록 스피릿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위대한 종교를 감히 삐딱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전 한국 공연에서는 기독교인들의 반발을 의식해 원작보다 상당히 순화된 무대를 선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공연을 이끈 이지나 연출은 ‘록 스피릿의 부활’을 모토로 뮤지션 정재일을 기용해 이제껏 우리가 뮤지컬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적 사운드를 빚어내며 작품의 오리지낼러티를 되찾았다. 2시간15분 내내 록과 클래식 사운드가 번갈아 휘몰아치며 유다(윤도현ㆍ한지상ㆍ김신의)의 고통에 찬 외침과 예수(박은태ㆍ마이클리)의 헤비메탈에 가까운 폭풍고음이 교차할 때 객석은 신격과 인격의 피 튀기는 갈등에 압도되고 만다.

시각적 조형미도 압권이다. 무대는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다. 황량한 사막에 천장에서 기둥 몇 개가 내려올 뿐이지만 감각적 스타일리스트 이지나 연출은 미니멀한 무대세트와 현대 무용에 버금가는 파워풀한 군무로 율동적인 조형미를 만들어냈다. 1막에선 스토리라인을 착실히 밟지 않고 핵심만 부각시키는 상징적 연출이 다소 불친절하게 다가오지만 2막에 이르러 이성과 논리를 간단히 초월하는 감동적인 음악과 함께 압도적인 비주얼이 마구 쏟아져 나오면 무대 미학 자체에 넋 놓고 빠져들게 된다. 거미줄에 걸린 십자가를 형상화한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메인 테마 ‘수퍼스타’를 열창하는 유다와 요동치는 군중의 군무 속 외로운 예수의 십자가가 대립하다 두 개의 십자가가 위아래로 포개지며 섬광 같은 빛줄기가 쪼개지는 예수의 책형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듯하다. ‘다 이루었다’며 숨을 거둔 뒤 어둠에 반쯤 잠긴 십자가 예수의 실루엣만 드러내는 엔딩도 마치 바로크 시대 종교화를 보는 것처럼 숭고한 조형으로 고요한 감동을 자아낸다.

어떤 이는 말할 것이다. 모든 의문을 초월하는 부활을 보여주지 않고 인간적인 죽음에서 단호히 막을 내려버린 것이 불경이라고. 하지만 증거도 안 보이는데 닥치고 기적을 믿으라는 관념적인 강요보다 시청각적 충격과 감동을 통해 신의 섭리에 대한 발칙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오히려 적극적으로 신성에 접근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누구든 예수의 정체를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자, 이 무대에 돌을 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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