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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초로 유기농 배 · 사과 재배 "거듭된 실패 오뚜기처럼 일어났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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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농원의 주인장 김경석(오른쪽)·장상희씨 부부가 배 화접을 하던 중 포즈를 취했다.

힐링 열풍이 불면서 친환경 농산물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산 둔포면에서 주원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경석 대표는 전국 최초로 유기농 배와 사과를 생산해내며 타 농업인들에 귀감이 되고 있다. 6만2810㎡(1만9000여 평)의 대지에서 그가 올리는 수익은 연 매출 5억여 원. 비교적 이른 나이에 귀농해 갖은 시련을 딛고 유기농 농사꾼으로 거듭난 그의 사연을 들어보자.

“저는 배 농사를 짓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생각했죠. ‘농약을 주다 보면 토양뿐 아니라 이를 먹는 소비자 심지어 농사꾼들의 건강에도 좋지 않겠지’라고요. 그때부터였습니다. 제가 유기농 과일을 생산하기로 결심한 시기가 말이죠.”

김 대표는 유기농 배와 사과를 재배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얘기했다. 친환경 농산물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유기농산물, 무농약농산물, 저농약농산물이다. 말 그대로 저농약농산물은 최대한 농약을 뿌리지 않은 농산물이며 무농약농산물은 유기합성농약은 일체 사용하지 않고, 권장량의 화학비료만을 이용해 재배해야지만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유기농산물로 인증을 받으려면 농작물 재배기간 동안 유기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재배(전환기간:다년생 작물은 3년, 그 외 작물은 2년)해야 한다. 굳이 어떤 농산물이 더 몸에 좋다고 딱 잘라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유기농 농산물의 인증과 재배 과정은 셋 중 제일 까다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살펴보면 유기농 농산물을 생산해내고 있는 농업인은 한둘이 아니다. 그렇지만 김 대표는 누구보다 빨리 유기농 농산물 재배에 뛰어든 ‘귀농인’이기 때문에 관심을 더 끌고 있는 듯하다.

“제가 처음 유기농 농산물 재배를 시작했을 때 남들은 저보고 ‘무모한 도전’이라고 비웃었죠. 주변에 유기농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사꾼들이 없어 힘들긴 했지만 ‘언젠가 빛을 볼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찰 있었지만 굳은 의지로 초석 다져

그가 현재 일구고 있는 농장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영농후계자인 셈이지만 농장을 물려받기까지 잦은 마찰을 빚었다. 그의 아버지는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남들과 똑같이 평범한 배를 생산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남들과 다른 배를 생산해내고 싶었다.

“막연히 어린 시절 농약이 안 좋다고 생각해 내린 결론이 아닙니다. 여러 서적을 통해 농약이 인간에게 미치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무조건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해 내겠다는 결론이 선거죠. 아버지는 그런 저를 이해 못 하셨어요. 그래서 후계자의 길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갔죠.”

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 혼자 서울로 상경해 학업에 열중했다. 세종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재직하던 중 그는 다시 한번 아버지의 권유를 받게 됐다. “내 나이 70이 가기 전 아산으로 다시 내려오지 않으면 평생 일궈온 농장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 그는 “그럼 경영권을 모두 저에게 주십시오”라고 다시 한번 자신의 의지를 내보였다. 마지 못해 그의 아버지는 그가 유기농 배와 사과를 생산할 수 있도록 허락했고 그때부터 김 대표의 도전은 시작됐다고 한다.

“제가 그렇게 고향에 다시 온 때가 1996년이었어요. 그때부터 경영권까지 모두 넘겨받는다는 전제하에 아버지 밑에서 착실히 공부했죠. 그리고 전국적으로 소문난 유명한 배 농장과 사과 농장을 돌아다니며 현지답사를 했어요.”

실패 거듭했지만 꿋꿋이 일어나

몇 해에 걸쳐 초석을 다진 그는 2000년도부터 본격적인 유기농 배와 사과를 생산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뗐다. 하지만 수월하지 않았다. 농약을 주지 않고 생산한 농산물은 일반 배·사과와 달리 생김새는 못생겼고 크기도 작았기 때문에 도매상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2004년에는 더 큰 시련이 그에게 찾아왔다. 농약을 주지 않은 탓에 배·사과나무에 벌레가 꼬여 ‘흑성병’에 감염된 것. 봄에는 낙엽이 떨어지고 한여름에 열매가 피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흑성병 때문에 과일 생산이 중단된 것은 물론 나무까지 모두 새로 심어야 했다. 추정 피해액은 10억여 원에 육박했다.

“그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예상이 ‘혹시나’에서 ‘역시나’로 바뀐 순간이었죠. 하지만 포기는 없었습니다. 유기농에 대한 저의 지식이 부족했다고 생각이 들어 이번엔 우리나라가 아닌 해외로 눈길을 돌렸죠.”

그는 곧바로 단국대학교 농업 대학원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방학기간 중에는 친환경 농업으로 유명한 세계 여러 나라를 견학하며 지식을 쌓았다. “해외를 돌다 보니 우리나라가 정말 친환경 농작물을 생산하기 어려운 기후를 갖고 있다고 느꼈어요. 일단 여름에는 비가 많이 오고 가끔은 가뭄도 오잖아요. 선진 농업으로 유명한 독일 같은 경우는 기후가 좋고 나라의 지원도 좋더군요. 그래서 생각했죠. 일반 배가 아닌 면역력이 뛰어난 저항성 품종을 개량해 생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항성 품종으로 승승장구 타 농업인에 귀감

그는 2007년도에 국내최초로 유기농 농산물 국제 인증을 받고 본격적으로 배와 사과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농촌진흥청으로부터 품종 개량에 도움을 받아 일반 과일보다 더 면역력이 뛰어난 품종을 심어 얻은 결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 배와 사과보다는 크기가 작았고 못생긴 과일을 생산해냈다. 일반 과수원에서 생산되는 과일은 90% 정도가 시장으로의 출하가 가능했지만 김 대표의 과수원에서 생산되는 과일은 40% 정도만 출하가 가능했다. 그래서 온라인 마케팅을 선택했다. 유기농 배와 사과의 우수성을 홈페이지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알렸고 직거래로 매출을 극대화했다. 또 도저히 출하하기 어려운 과일들은 따로 모아 즙·엑기스·잼 등으로 가공해 팔았다. 물론 이 제품 모두 유기 인증을 받은 상품이어서 직거래에 어려움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이제는 유기농 과일 재배에 관심을 보이는 전국 각지의 농사꾼들이 그의 농장에 견학을 오기도 한다.

 “최근 ‘힐링’열풍이 불면서 유기농산물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늘었어요. 저희 농장을 찾아주시는 분들께 하나라도 더 알려드리려고 노력하죠. 농약이 없는 ‘건강한 먹거리’의 생산이 증가하면 모두에게나 좋은 일이잖아요. 하지만 아직까지 유기농산물은 경매 시장에 나갈 수 없어 유통에 어려움이 많아요. 하루빨리 국가에서 유기농산물의 가치를 인정하고 유통 판로를 열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김 대표는 끝으로 친환경 농산물의 유통 판로가 활발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문의 김경석 대표 010-9531-2535

글=조영민 기자 cym2060@joongang.co.kr, 사진=조영회 기자 rut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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