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盧, 흔들리는 '北송금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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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묻는 과정에서는 민심도 살피고 정치적 고려가 필요하지만, 사실을 밝혀나가는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가 들어가면 안된다."(지난달 18일 TV토론에서 노무현 당선자)

온 국민 앞에서 밝힌 盧당선자의 '2억달러 대북 송금'해결 원칙이 거꾸로 가고 있다.

2일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가 "'통치 행위'라면 미주알고주알 캐선 안된다.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하더니 3일 이낙연 당선자 대변인은 검찰의 수사 착수 여부까지 "국회가 양식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당선자 측은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의지에 변함이 없다며 믿어달라고 했다.

나름대로 盧당선자가 진상규명을 국회에 맡기자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건 명분대로 국익을 위해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여기엔 '2천2백35억원의 진실'을 국회로 떠넘겨 유야무야하게 만들자는 숨은 의도가 있을 수도 있고, 김대중 대통령을 상대로 "진실을 고백하라"고 윽박지르기 어려우니 한나라당의 공세를 이용하겠다는 계산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盧당선자가 밝혀온 '원칙'에 위배되는 편법이다.

"검찰이라면 현명하고 슬기롭게 판단할 것이다"(문희상 내정자)라는 말도 검찰 바로세우기에 맞지 않는다. 이래놓고 盧당선자는 집권 후 검찰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원칙대로 수사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1988년 5공 비리청산 특위에서 "전직 대통령의 정치자금 문제는 사법처리보다 정치적 해결에 맡겨야 한다"는 법무부 장관을 향해 "검찰수사에 성역이 어디 있느냐"고 호통치던 청문회 스타 '노무현 의원'의 모습은 변하고 있는 것일까.

서승욱 정치부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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