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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자동차업계 칭기스칸 꿈꾸는 글로벌CEO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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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회장

지난해 한국 재계의 최대 ‘신데렐라’는 누구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현대·기아차 정몽구(64) 회장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현대·기아차는 지난 한해 잘 나갔다. 현대·기아차와 현대모비스(옛 현대정공) 등 그룹의 주력기업들이 발표한 당기순이익 합계만 2조원이 넘었다.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10년 미만 10만 마일 품질보증’제도의 성공으로 미국 시장 자동차 판매대수를 전년 동기대비 40%나 늘렸다.

최근 현대차는 자동차의 본토 미국 시장에 본격 상륙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미국 현지공장 건설을 위해 정몽구 회장은 지난 14일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미 앨라바마에서 현지공장 기공식에 참석하고, 본격적인 글로벌 작업에 나섰다.

재벌가의 장자(長子)로 각인됐던 그의 투박하고 황소 같은 이미지는 이제는 검증받은 글로벌CEO로 탈바꿈하게 됐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경영 성적은 세간에서 제기됐던 MK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일거에 불식시킨 것이다.

지난해 12월17일 「아시안 비즈니스 위크」는 ‘현대자동차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며 정몽 구회장의 경영 능력을 극찬하는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내보냈다.

1999년 3월, 그가 현대자동차 회장에 취임했을 때 오늘날과 같은 실적을 올릴 것이라고 본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눌한 듯한 인상, 논리적이지 못한 말투, 검증되지 않은 경영 능력 등의 이유로 그는 재계의 시선을 별로 받지 못했다. 이제 MK가 자동차를 맡은 지 3년. 그의 이름 앞에는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능력 있는 경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정몽구 회장의 이같은 대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단순히 행운이었다고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많다. 외환위기로 환율이 떨어졌고,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아져 가격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현대차의 성장이 가능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대우자동차가 쓰러져 반사 이익을 본 측면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행운뿐 이었을까.

정몽구 회장을 두고 아버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의 중년시절을 꼭 닮았다고 말하는 주변 인사들이 많다. 한번 결정하면 우직할 정도로 무섭게 밀어붙이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은 아버지 정회장의 장점이라는 설명이다. 충성심과 정직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평가하는 것도 부친과 비슷하다.

충성심과 정직이 최고 가치

정회장은 서울에 머물 때면 매일 오전 6시30분 어김없이 양재동 본사에 출근한다. 6시 40분부터 업무를 시작해 거의 10분도 낭비하지 않는 것이 그의 근무원칙이다. 참모진인 김동진 현대차 사장·김뇌명 기아차 사장 등은 오전 6시에 출근, 브리핑 준비를 한다. 기타 다른 임원들은 전날 정몽구 회장에게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밤늦게까지 일하기 일쑤다.

MK의 트레이드 마크는 황소 같은 고집이다. 외모에서도 물씬 풍긴다. 이 고집이 위기에 빠질 뻔한 회사를 구했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정부의 현대전자·현대건설 및 금강산 프로젝트 지원 압력을 끝까지 거부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99년 북한 프로젝트에 돈을 쏟아 붓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계열사인 현대전자·현대건설이 부도위기에 처하자 MK측에 지원을 요청했다. 99년 소위 ‘왕자의 난’당시 몽헌계열과 전면전(?)을 벌였던 MK는 정부측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이었을까. MK의 현대자동차는 그 직후 국세청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당했다.

2000년 말 정몽헌 회장이 추진하던 금강산 개발사업이 자금난으로 좌초 위기에 봉착하자, 정부는 다시 한번 MK에 금강산 프로젝트 참여를 권유했다. 당시 이계안 현대차 사장은 정부로부터 금강산프로젝트에 참여하라는 강력한(?) 압력을 받고 고민을 거듭했다.

일부 신문에서는 청와대 소식통을 인용, ‘정몽구 회장이 조만간 방북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오보(誤報)로 끝났다. 현대차가 해당언론사에 적극 반론을 제기하고 사실 무근 보도자료를 내면서 극구 부인했다. 정회장은 ‘황소고집’으로 또다시 이 정부의 요구를 거부했던 것이다.

정회장은 청와대가 불쾌감을 표시하자, 당시 주인을 잃고 표류하던 해태타이거즈 프로야구단을 인수했다. 금강산 사업에는 불참하는 대신 현 정부의 텃밭인 광주를 기반으로 둔 타이거즈 야구단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MK는 단순한 성격이다. 그의 경영 특징 중 하나는 ‘쉬운 말로 하라’는 것이다. 부하들이 영어와 한문을 섞어서 어렵게 말하면 어김없이 “쉬운 말로 해”라고 지시한다. 브리핑을 받을 때도 아주 알기 쉽게 문제의 핵심을 비유하거나 직설적인 표현을 좋아한다. 취임 초 기아공장을 방문했을 때는 정공 출신 측근들이 기아차 임직원에게 MK의 스타일을 알려줘 브리핑 시간을 단축시킨 적도 있다.

미묘한 사안이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는 방식도 간단하다. 회사경영에 좋은 것과 나쁜 것, 그리고 우리편과 적군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식 사고방식이 드러난다.

MK는 빠른 것을 좋아한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풀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참지 못한다. 정회장 지시사항에 대한 보고서도 최단 시간 내 올려야 한다. 때문에 정회장 지시가 떨어지면 해당 실무부서는 한바탕 홍역을 치룬다. 초창기 한때 회사내에 ‘광속(光速) 결제’ ‘광속 경영’이 유행했던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보고는 간단하고 빠른 게 좋다

MK는 30년 가까이 최고경영자 생활을 했다. 현대차써비스와 현대정공 등을 독자적으로 경영해오면서 수많은 참모진과 임원진을 봐왔다. 그들의 눈빛만 봐도 MK는 분위기를 파악할 정도로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다. 투박한 외모지만 그의 방에 결제서류를 들고 들어간 임원들은 어김없이 입을 삐쭉 내밀거나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나온다. MK가 의외로 사업의 세세한 부분까지 꽤뚫고 있기 때문이다.

어영부영 넘어가는 법이 없다.임원들은 숫자 하나 가지고 혼나기 일쑤다. 신차가 나오게 되면 반드시 품질 품평회 등을 한다. 그 자리에서 정회장은 디자인은 물론 색상과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도 전문가 수준으로 지적을 한다. 기술연구소 직원들조차 놀라는 적이 많다. 그만큼 섬세한 면이 많다.

그는 부친만큼이나 조직원들의 충성심과 정직을 중요한 가치로 평가한다. 99년 자동차 회장 취임후 첫 미국 출장 때의 일화다. 당시 현대차 출신과 정공 출신들이 뒤섞여 정회장 미국 출장길에 동행했다.

또 미국 현지법인에는 이미 현대차 출신들이 상당수 파견돼 일을 하고 있을때였다. 출장 중에 어느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정회장이 불쑥 한마디 내뱉었다. “막걸리를 마시고 싶은데 여기서 구할 수 있겠느냐?”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 대목에서 현대차 출신과, 정공 출신들 간에 미묘한 차이점이 발생했다.

미국 현지법인에 근무하던 현대차 출신들은 “여기는 미국 땅이기 때문에 막걸리를 구할 수 없다”고 즉석에서 잘라 말했다. 그러자 현대정공 출신 참모들은 그 자리에서 “구해보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뿔뿔이 흩어져 막걸리를 구하러 나갔다. 한참이 지난 뒤 정공 출신들도 막걸리를 구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오기는 했다. 그러자 MK는 “그냥 됐다” 면서 어색한 상황을 넘겨버렸다.

이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공 출신들은 MK의 성격을 잘 안다. 그래서 멀리 미국 땅에서 막걸리를 찾는 회장을 위해 밖에 나가 찾아보는 시늉이라고 한 것이다.

MK는 한마디로 이런 행동을 원한다. 찾아보지도 않고 구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보다 일단 찾아보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원하는 것이다. 합리적이라기보다는 보스 기질이 강하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더 요구하는 것이다.

취임 3년을 맞은 현대차는 MK의 친정 체제를 완전히 갖추었다. 현대차·기아차를 비롯 계열사 주요 보직에 자신의 측근들을 모두 앉혔다. 정공 출신 핵심인사들이 자금·인사·감사 ·기술연구소 등 주요 보직을 장악했다.

이를 두고 현대차 출신들은 ‘점령군’이니 뭐니 하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MK측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최고경영자가 바뀌면 당연히 이루어지는 인사일뿐이라는 것이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바뀌는 보직 숫자가 4천개가 넘는다고 하지 않느냐는 반응이다.

파격적인 비공식 포상금

전임 정세영 회장 때와 다소 틀린 경영 스타일로 인해 취임 초반 삐걱 거리던 회사 분위기도 안정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정세영 회장이 차분하고 조직적으로 경영을 해왔다고 하면, MK는 한마디로 파격적이고 통 큰 스타일로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지금도 현대차 직원들은 정세영 회장에 대해서는 비교적 좋은 기억들을 갖고 있다. 정세영 회장은 검소하게 생활했으나 세상물정을 모를 정도로 다소 인색한 면이 없지 않았다고 기억한다.그러나 MK는 정세영 회장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화통하다. 정세영 회장 때는 사무실마다 있던 컬러프린터를 모두 없앴다. 그러나 MK가 들어서며 다시 컬러프린터기가 사무실마다 등장했다.

정몽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오히려 간단하고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MK는 취임 이듬해인 2000년 말 현대차 전 직원(약 4만명)에게 1인당 모두 1백만원의 특별 보너스를 지급했다. 단체협약에 명시된 것도 아니고, 그냥 준 것이다. 참모진이 특별 보너스 지급에 반대하자 정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노조가 한달 파업하면 1조원 이상 손해를 본다. 여기에 비하면 4백억원은 크지 않은 금액이다. 노사 평화를 유지하면 종업원들이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

정회장은 사무실보다 현장을 좋아한다. 해외 출장이 없는 동안에는 어김없이 공장을 찾는다.이때 생산성을 높이거나 기술혁신을 이뤄낸 직원들을 직접 불러, 격려금을 주는 것도 특이하다. 공식적인 상금 외에 비공식적인 두툼한 봉투를 준다.

이 봉투를 한 번이라도 열어본 직원이라면 전임 정세영 회장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액수에 입이 떡 벌어진다고 한다. MK는 취임 후 직원들 월급도 상당히 올려주었고, 공식·비공식 포상금도 파격적으로 늘렸다.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을 해준다는 원칙이기도 하다.

정회장의 인사 스타일은 독특하다. 그는 회장 취임 초기 기아자동차 아산공장의 임원들과 가진 저녁 술자리에서 술 취한 한 임원이 정회장 바로 앞자리에 앉아 도에 지나친 ‘아부’를 하자 다음날로 그 임원을 파면시켰다.

한 임원은 회장에게 ‘거짓 보고’를 한 것이 들통나 곧바로 좌천됐다. 조직의 ‘최고 보스’로 자처하는 정회장의 강한 성격 때문에 참모들은 정회장을 매우 어려워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글로벌 작업 진두지휘

최근 정회장의 행보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글로벌화 작업이다. 정회장은 지난 2000년 다임러크라이슬러와의 전략적 제휴를 맺은 이후 터키·우즈베키스탄·멕시코 등으로의 진출을 가속화 시켰다.

또한 지난해 미국·일본·중국 3개국을 집중공략하듯 각국을 세 차례나 방문했다. 중국에선 3대 자동차집단인 둥펑자동차집단과의 자본제휴로 승용차사업에 본격 뛰어드는 개가를 올렸다. 이는 고 정주영 회장 때부터 추진해 왔던 것이어서 의미가 각별하다. 또 최근에는 미 앨라바마 주에 현지공장을 짓기로 최종 결정했다.

MK는 현대·기아차그룹을 세계 5위권 자동차기업으로 올려놓기 위해 해외에 1백만대 규모의 생산설비 확충하는 모험에 나섰다. 그는 요즘 또 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 99년 유치위원장을 맡은 후 129차,130차 세계박람회기구(BIE)총회 참석을 비롯해 유럽·아시아·미주지역의 10개국 이상을 순방했다.

세계박람회는 월드컵·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꼽힌다. 이 3개 행사를 모두 개최한 나라는 전세계에서 영국·독일·스페인·미국·일본 등 5개국에 불과하다. 그만큼 대형 행사를 주최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적 여건과 함께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정회장이 세계박람회에 유달리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고 정주영 회장이 올림픽 유치에 공헌했고, 동생인 정몽준 의원이 월드컵을 유치한 데 이어 자신이 세계박람회를 유치할 경우 세계 3대 축제를 모두 정씨 일가에서 유치하는 전무후무한 업적이 되기 때문이다.

MK는 식성이 좋지만 개고기는 전혀 먹지 않는다. 주말이면 골프 대신 등산을 즐긴다. 가족들을 현대차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그의 취미다. 경복고 시절 그는 럭비선수로 활약했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몽골고원의 영웅 ‘징기스칸’이다. 현대차가 징기스칸처럼 세계 대륙을 석권하는 그의 꿈이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정몽구회장 약력

1959년 경복고 졸업
67년 한양대 공업경영학과 졸업
70년 현대건설 입사
73년 현대자동차 이사
74년 현대자동차서비스 대표이사
77년 현대정공 대표이사 이상
87년 현대정공 대표이사회장
96년 현대그룹 회장
99년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대표이사 회장
/2010년 세계박람회 범국민유치위원회 위원장

글 이기수 기자 (leek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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