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盧당선자, 진상규명 의지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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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억달러 대북 비밀 지원의 미스터리를 놓고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말을 바꾸고 있다. 지난달 하순 그는 "국민적 의혹사건에 대해 특검 받을 각오로 수사해달라"고 검찰에 철저한 진상 규명을 강조했다.

그런 그가 어제는 "진상은 밝혀져야 하지만 외교적 파장과 국익을 고려해 진상 규명의 주체.절차.범위를 국회가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로 바꿨다.

그것은 검찰을 독려했던 명쾌한 자세에서 한참 후퇴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진실 추적의 의지는 드러냈지만 정치적 해법에 비중을 뒀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통상적으로 '국회 판단'이라는 과정에는 여야 간 절충, 나쁘게 말하면 밀실 흥정의 냄새가 묻어날 수 있다.

盧당선자의 입장 변화가 김대중 정권과의 교감 끝에 나온 것이라는 논란도 진상 규명을 어렵게 한다. 현대상선의 자료 제출→감사원의 감사결과 발표→김대중 대통령의 사법심사 부적절 발언→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의 초당적 해결 주장은 정략적 해법의 시나리오가 있다는 의혹을 낳고 있다.

그 해법은 쉽게 말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줄 사안이니 국민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생각하고 꼬치꼬치 알려고 하지 마라"는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뒷거래, 거짓말, 뇌물, 불법, 혈세 낭비의 의혹이 넘쳐나는데도 정치적 고려를 내세운다면 국민을 무시하는 자세다. 그런 해법에 盧당선자가 동의하려 하니 국민이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다.

비밀송금 미스터리 해법의 우선 순위는 엄정한 진상 추적이다. 정치적 고려는 의혹의 실체가 드러난 뒤 국민의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할 사안이다.

남북관계에서도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져야 국익을 도모할 수 있다. 의혹이 파헤쳐지기 전에 정치적 해법을 거론하는 것은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

盧당선자는 대선 기간에 강조해 왔던 정도(正道)와 원칙을 이번의 의혹 파헤치기에 적용해야 한다. '국회 판단'이란 우회적 입장은 철회돼야 한다. 검찰수사를 독려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