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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힘, 진화하는 사회공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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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현대자동차그룹 서울 양재사옥 대강당에서 열린 ‘해피무브 글로벌 청년 봉사단’ 10기 발대식. 이들은 겨울방학을 활용해 말라위·가나·중국·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업(業)의 특성을 살린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업종의 특성을 살린 ‘무브(Move)’라는 이름의 사회공헌을 펴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

제조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김모(59)씨는 자신에게 루게릭병이 발병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하루 하루 위축되는 근육 만큼 삶의 의욕도 잃어가던 그에게도 8개월 전부터 희망이 생겼다. 안구를 이용해 글자를 입력하고 마우스를 움직일 수 있는 장애인 안구마우스 ‘아이캔(eyeCAN)’을 접하게 된 것이다. 김씨는 요즘 아이캔을 이용해 부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e메일로 전한다. 기존에 운영하던 회사의 업무 지시도 한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봉사활동보다는 기업의 특성에 맞춰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업(業) 연계형 사회공헌 활동’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아이캔 마우스와 현대자동차의 ‘무브’ 활동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의 아이캔 마우스는 기존 1000만원대의 안구 마우스 가격을 개당 5만원 수준으로 낮췄다.

현대차는 2005년부터 휠체어 슬로프·회전시트 등을 장착한 ‘이지 무브’ 차량을 개발해 보급해왔다.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보조·재활기구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이지무브도 설립했다. 현대차 그룹이 100% 출자했지만 주식의 70% 이상을 10개 사회공익재단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KT는 이동통신업의 특성인 ‘소통’을 살린 사회공헌 활동을 펴는 경우다. 2003년부터 ‘소리찾기’ 사업을 통해 청각장애 아동들에게 귀 수술을 지원해 413명에게 소리를 되찾아줬다.

업의 특징을 살린 또다른 사회공헌의 대표적 사례는 롯데백화점이다. 마케팅과 서비스에 강한 백화점의 노하우를 전통시장에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 비보이와 피에로 공연 등 백화점에서 하는 이벤트를 전통시장에도 지원해 젊은 고객이 올 수 있는 유인책을 제공한다. 또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서비스와 위생·안전 개선을 위해 서비스매니저와 위생관리사·안전환경팀 직원들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점검하고 교육을 진행한다.

자료=전국경제인연합회

신세계푸드는 요리라는 업의 특성을 살린 경우다. ‘조리아카데미’에서 중고생들에게 임직원 멘토가 한식·일식·중식·양식 등 조리사 관련 자격증을 따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신세계SVN의 ‘희망파티쉐’는 제과·제빵 교육과 장학금은 물론, 정규직 입사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5년간 1900여 명의 아모레 카운슬러가 전국 7500명의 여성 암 환자를 찾아 미용기법과 함께 삶의 희망을 전달한 아모레퍼시픽의 사회공헌 활동도 업의 특성을 잘 살린 경우다. 한화건설은 건설사의 특기를 살려 장애인 시설 내 유휴공간에 ‘꿈에 그린 도서관’을 조성 중이다. 2011년 서울 홍은동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그린내’에 만든 1호 점을 시작으로 현재 20호 점까지 열었다.

올 1월 평창에서 개최된 ‘스페셜 올림픽’도 기업들의 기부와 참여가 큰 힘이 됐다.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해 현대차·SK·LG·롯데·포스코·GS·현대중공업·한진·한화·두산 등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요 회원사들이 80억원이 넘는 후원금을 내놨다. 기업 사회공헌 활동을 컨설팅하고 있는 임팩트스퀘어의 도현명 대표는 "업의 특성을 살린 기업 사회공헌활동은 정부 복지가 미치지 못하는 사각 지대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분야가 장애인 지원이다. 등록 장애인 수는 2000년 91만 명에서 2011년 기준 251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 정부 혼자 감당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사회공헌 지출 규모 역시 크게 늘고 있다. 전경련이 지난해 말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과 회원사등 60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기업의 사회공헌 비용은 3조1241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1조원을 넘어선 이후 10년 만에 3조원을 넘었다. 3조1241억원은 같은 해 공적연금을 제외한 보건복지부 사회복지 예산(15조3887억원)의 20%에 달하는 수준이다. 기업사회공헌 인식 조사 결과에선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 10명 중 8명이 경기 침체 속에서도 사회공헌 활동 규모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50.7%)하거나 ‘확대’(35.1%)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이용우 전경련 사회본부장은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10년을 넘어서면서, 양과 질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임직원의 전문 지식을 활용한 ‘프로보노’ 활동이 느는 등 기업의 전문성이 지역사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기업은 물론 개인·공공기관 등이 함께 하는 국내 최대의 자원봉사 대축제가 올해도 5월 한달간 열린다. 1994년 중앙일보가 미국·영국의 자원봉사계가 펼치는 ‘변화를 만드는 날(Make a difference day)’ 행사를 국내에 도입해 처음 시작한 ‘전국 자원봉사 대축제’다. 이 행사의 취지는 대축제 기간을 정해 그 기간 중 단 하루라도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다양한 형태의 봉사 활동을 펼쳐 우리 이웃과 지역 사회를 변화시켜보자는 것이다.

해마다 특정한 주제를 정해 자원봉사를 진행한다. 올해 대축제 주제는 ‘즐겨요 자원봉사! 함께 가요 행복코리아!’다. 참가 신청서를 e메일이나 팩스로 사전에 접수하고, 개인·가족·단체·기업·학교 등 누구나 이 기간 중 최소 4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실천하면 중앙일보와 JTBC, 전국자원봉사대축제 조직위원회가 이 중 우수 사례를 발굴해 시상한다. 봉사활동 내용을 홈페이지에 준비된 양식에 작성해 6월 28일까지 17개 광역시·도 자원봉사센터에 제출하면 심사 대상에 오른다. 지역 예심·본심을 거쳐 총 29개 팀에 총 상금 2000만원을 시상한다. 올해 개막식은 다음달 2일 정오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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