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공장
강명관 지음, 천년의상상
132쪽, 1만1000원
“공부는 논문의 양산(量産)으로 대치됐고, 교육은 학점 주고받는 과정에 불과하다. 대학이 붕괴하고 있다.”
부산대 한문학과 강명관(55) 교수의 진단이다. 책 제목 ‘침묵의 공장’이란 대학을 가리킨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을 기성품 찍어내는 공장에 비유했다. 그것도 말이 없는 공장. 대학의 현실을 아파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목소리조차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침묵이라 했다.
저자가 볼 때, 한국의 대학은 개인의 사회적 서열을 매기는 곳이고, 차등화된 노동자를 배출하는 곳이 된 지 오래다. 강요된 공부에 지친 이들이 모인 곳, 대학이 다시 창조적 열정이 피어나는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냈다고 한다.
저자의 촉수는 한문학을 넘어 인문학 전반으로 확장된다. 그렇게 된 데는 부산대 명물로 꼽혔던 ‘인문학담론모임’ 영향이 크다. 뚜렷한 조직도 없이 1995년 3월 몇몇 교수들이 하나 둘 모이며 시작돼, 방학을 빼고 매년 8번씩 12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100회를 채웠다고 한다.
토론 주제는 인문학이 주류였지만 예술·정치학·경제학·사회학·천문학을 넘나들었다. 일찍부터 학문간 융합의 가능성을 실험했던 셈이다. 2007년 6월 막을 내린 그들의 작은 역사가 책 속에 담겼다.
6년 전 인문학담론모임이 해산하던 날 저자가 발표했던 글이 이 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폐회를 아쉬워하는 거친 숨소리가 곳곳에 스며 있다. 6년 전과 오늘의 대학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은 듯하다. 인문학 위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되풀이된다.
하지만 저자는 인문학의 위기를 묻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인간이 존재하고 인간의 문화가 존재하는 한 인문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쇠퇴한다면 그건 제도권 내에서 돈과 권력에 길든 인문학일 뿐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인문학의 수공업성’ 회복을 외친다. 연구비 수주 실적이나 논문의 수량으로 능력을 평가받는 대학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외부 연구비 의존도를 최소화하고 각종 행정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지식인의 길을 걸어가보자는 제안이다. 그럴 때 진정한 인문학의 길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배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