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일본, 재일 한국인 신변 안전 책임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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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베 정권이 극우 성향을 보이면서 한국인을 상대로 한 일본 우익단체들의 위협도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 우익단체들은 평소에도 도쿄 도심에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반한 시위를 벌이곤 했다. 그러다 이젠 한국인을 특정해 신변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살벌한 언사를 서슴지 않고 있다.

 예컨대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이라는 우익단체는 “한국인을 죽이자” “목을 매달아라”는 등 이성을 잃은 협박을 하고 있다. 지난 23일엔 재일동포 3~4세들로 구성된 재일한국청년회가 보다 못해 항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청년회의 지적대로 우익단체의 가학적·인종차별적 선동은 같은 인간으로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걸 예절로 삼는 일본인들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그 같은 우익의 도발을 일본 치안당국이 적극 제어하지 않으면 언제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우익단체의 과격파 회원들이 한국인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하거나, 양측의 시위 과정에서 폭력충돌이 일어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주일 외교관이나 상사원, 또는 잠시 머물고 오는 관광객들은 그처럼 살벌한 분위기를 실감하기 어렵다. 일본인들은 자기네와 비즈니스를 하는 상대방이나, 돈을 뿌리고 가는 관광객들에겐 친절히 대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본 내에서 사회적·경제적 약자인 재일동포와 유학생들이다. 이들은 싫든 좋든 장기간 일본에서 살아야 하므로 우익의 표적이 되기 쉽다. 자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신변보호는 문명국가의 당연한 책임이다. 일본 정부는 우익의 도발에 의한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에 재일 한국인에 대한 신변안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일본 극우세력이 도발을 지속할 경우 국내에서도 일본인을 상대로 유사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일본 우익에 빌미를 줄 법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경비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물론 그런 대책도 악화된 한·일 관계를 개선시키는 데엔 한계가 있다. 궁극적으론 극우 정치인들의 도발과 망언에 흔들리지 않는 양국 국민의 성숙한 이성에 기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