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없으면 화장품 출시 테스트 불가능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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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쿨렌버그

소비자가 풍부한 정보를 바탕으로 깐깐하게 제품을 고르는 한국 시장은 글로벌 브랜드들의 테스트 마켓이다. 남성용 화장품도 예외는 아니다. 백화점용 남성 기초화장품 세계 1위 브랜드인 비오템옴므가 한국 시장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달 시장조사를 위해 한국을 찾은 패트릭 쿨렌버그(43) 비오템옴므 글로벌 사장은 “한국 남성 10명 중 8명은 토너(스킨)나 모이스처라이저(로션·크림)를 바르고, 클렌저(세안제) 등 사용하는 제품도 평균 3.6개에 달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가 남성용 기초화장품 시장을 분석하기 시작한 2005년 이후 한국은 인구가 훨씬 많은 중국·일본·미국을 제치고 시장 규모에서 부동의 세계 1위라는 것이다. 미국은 10명 중 1명 이하, 유럽은 10명 중 4명 이하의 남성이 기초화장품을 쓴다.

 쿨렌버그 사장은 “숫자로만 보면 한국 남성이 세계에서 가장 피부에 신경을 많이 쓰는 셈”이라며 웃었다. 그는 “남성의 피부는 첫인상을 결정하고 안색이 현재 컨디션을 바로 말해 주기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며 “한국 남성들은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sophisticated) 시장”이라며 “피부 관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한국 여성들이 남편을 교육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성들의 화장품 사용 패턴을 남성들이 따라간다는 것이다.

 쿨렌버그 사장은 “신제품 개발 아이디어, 출시 테스트 모두 한국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비오템 브랜드의 상징이 된 특유의 ‘클렌저-토너-모이스처라이저’ 3단계 제품도 2005년 아내의 제품을 본 한국 남성들의 요청에 따라 개발했다는 것이다. 2006년 최초의 남성 전용 자외선차단제를 한국 시장에서 가장 먼저 출시한 것도 유난히 자외선 차단에 민감한 한국 여성의 성향을 따를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상은 적중해 이 제품은 한국에서만 전체의 70% 이상이 팔려 75ml 대용량 제품까지 출시됐다”고 소개했다. 비오템옴므는 올해 브랜드 홍보대사 겸 모델을 선정할 때도 다른 나라와는 달리 소비자 설문조사를 통해 배우 원빈을 낙점하는 등 한국 시장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쿨렌버그 사장은 “한국 남성은 외모 관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두 번의 계기가 군 입대와 결혼”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브랜드인 비오템옴므가 국내 브랜드보다 앞서 군 복무 고객을 위한 서비스인 ‘밀리터리클럽’을 2011년 시작한 이유다. 입영통지서 등으로 군 복무를 입증하면 누구나 회원에 가입할 수 있는데 그로부터 제대할 때까지 샘플, 제품 정보, 군화닦이 세트 등을 준다. 서울 청량리·의정부역, 고속터미널 인근 매장이 휴가 나온 군인들로 붐비는 이유다. 쿨렌버그 사장은 “2년 가까이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이들이 훌륭한 서비스를 받는 건 당연하다”며 “대만·태국 등 군 복무가 의무인 다른 나라에도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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