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송금 파문] 감사원 발표와 문제점

중앙일보

입력

감사원이 30일 현대상선의 4천억원 대출금에 대한 1백여일간의 감사를 최종 완료했다.

대북 송금과 관련, 이날 감사원이 발표한 내용은 간단하다. 현대상선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4천억원 중 2천2백35억원이 개성공단 조성사업비 등 7대 대북 관련 사업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돼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제출한 자료를 문자 그대로 검토하는 것 외에는 감사원이 별다른 조사활동을 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때문에 감사원 감사의 현실적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계좌추적권 등 자료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구체적 사용처를 밝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으로는 '부실 감사'라는 지적을 피해가기 어렵다. 애당초 '성역'을 설정한 짜맞추기용 감사가 아니었느냐는 말도 나온다.

감사원은 현대상선과 핵심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었지만 결국 아무도 고발하지 못했다. 지난주까지는 현대상선을 자료 미제출 혐의로 고발할 계획이었지만 지난 28일 자료를 전격 제출하면서 그나마 적용 가능한 법규도 사라졌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결국 고발도 안할 거면서 계속 고발 의사만 밝혀온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감사원은 또 당초 보도자료엔 "감사로는 사실 여부를 더 이상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해놓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사실상 대북 송금 사실을 시인하자 최종 보도자료엔 이 문구를 빼 빈축을 사기도 했다.

감사원은 지난 28일 현대상선이 자료를 제출하자 자료를 더 검토한 뒤 다음 주초쯤 감사위원회를 열고 검찰 고발 여부 등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부랴부랴 감사위원회를 소집해 종결지었다. 감사원 측은 "하루라도 빨리 종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대상선이 예상을 뒤엎고 '대북 사업'이란 사용처를 적시했다는 점, 金대통령이 대북 송금을 사실상 시인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감사일정 조정 압력이 있지 않았느냐는 의혹도 있다.

앞으로의 문제는 감사원은 물론 검찰 등이 제대로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대통령이 사실상 '사법처리 불가'방침을 밝혀 검찰이 계좌추적 등 본격 수사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럴 경우 현 정권에서 털고 가야 한다는 노무현 당선자 측의 희망과 달리 다음 정권으로까지 논란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盧당선자는 진상규명 여론과 金대통령의 "향후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가의 장래 이익을 위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발언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신홍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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