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통난 '4천억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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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비밀 송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해 9월 국회에서 한나라당 엄호성(嚴虎聲)의원에 의해 의혹이 제기된 지 4개월여 만이다. 그동안 청와대와 국정원.현대 등은 한결같이 "대북 지원은 없다"고 강력 부인했다.

국민을 상대로 한 지루한 '진실게임'공방이 이어졌으나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로 이들의 주장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게 됐다.

대북 지원설의 한가운데에 있던 박지원(朴智元)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해 10월 "북한에 단돈 1달러도 준 게 없다. 현금으로 정상회담의 대가를 지원한 적이 없으며,정부를 대신해 민간이나 민간기업이 지원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당시 "국정원을 음해하려는 시도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임동원(林東源)외교안보통일특보는 엄낙용(嚴洛鎔)전 산업은행 총재가 면담을 요청했다는 의혹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다.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4천억원을 대출받는 과정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민주당 한광옥(韓光玉) 최고위원(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기호(李起浩) 경제특보도 부인으로 일관했다.

韓위원은 당시 자신이 대출을 지시했다고 폭로한 엄낙용 전 산은총재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거나 전화를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韓위원은 "만약 내 말이 허위라면 정치를 안할 것"이라며 嚴전총재를 고소했다가 한달여 만에 취하했다.

李특보 역시 "현대상선 대출에 대해 보고받지도, 알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현대그룹을 이끌었던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회장은 지난해 10월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상선의 4천억원 대출에 간여하지 않았으며 문제의 돈은 북한으로 가지도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鄭회장은 "현대상선은 유동성 문제로 돈을 빌린 것이며 대출금을 갚는 데 썼을 따름"이라고 강조했다. 鄭회장은 지난 22일까지도 "4천억원 대북 지원설은 아는 바 없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4천억원을 대출해줬을 당시 이 은행 총재였던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대북 문제는 전혀 아는 바 없다"고 밝혔다.

당시 4천억원 대출을 직접 결재했던 산업은행 박상배(朴相培)부총재는 "대우그룹이 쓰러진 상황에서 현대까지 무너지면 국가경제에 심각한 파장을 초래할 것으로 판단, 일시 유동성을 지원했던 것"이라며 "국책은행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朴부총재는 그러나 최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강조하자 "돈이 북으로 넘어갔는지는 나로서도 알 수 없지만, 과연 돈의 흐름을 끝까지 추적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되겠느냐"고 한발 물러섰다.

김광기.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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