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토론 없는 국정토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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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전 대통령들처럼 주문을 많이 받아 서울로 올라가지 않겠다. 무슨 선물을 가져왔는지도 궁금해하지 마라. 특정지역의 문제보다 지방 전체가 함께 사는 아이디어를 짜 보자."(27일 대구의 노무현 당선자)

#2 "당선자가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울산에 대학을 만들겠다는 약속 꼭 지켜야 합니다""서울의 증권거래소를 아예 부산으로 옮기는 게 어떻습니까""(벽에 걸린 플래카드를 가리키며)'부산을 경제수도로'란 문구가 어떻습니까. 만들어 주시겠습니까"….(29일 부산의 토론자들)

"예…예…맘에 듭니다. "(盧당선자)

지방분권의 해법을 현장에서 찾겠다며 인수위가 마련한 '지방 분권과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전국 순회 토론회'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토론은 뒷전이고 지역 숙원사업을 당선자에게 각인시키려는 민원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노풍(盧風)의 진원지'라는 광주, 당선자의 경쟁자에게 몰표를 줬던 대구, 고향인 부산 할 것 없이 당선자의 선물 보따리에만 관심이었다.

문제는 충분히 예견된 일임에도 인수위 측이 일정을 잡고, 심지어 부추긴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당선자 인사말-지역 인사들의 일괄 질문-당선자의 일괄 답변'형식으론 애초부터 논리적으로 최선의 방책을 찾는 토론은 무리였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토론은 일방적인 부탁이나 연설로 흘렀다.

지방의 문제를 지방에서 찾겠다는 당초 발상은 좋다. 그러나 내용을 담을 만한 형식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盧당선자가 말한 '토론 공화국'은 '어떤 문제를 두고 여러 사람이 의견을 말하며 옳고 그름을 따져 논함'이란 '토론'의 사전적 의미를 살리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토론 없는 토론회'가 다른 곳에선 재연되지 않기를 바란다.

서승욱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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