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회의 경제민주화 논의 지나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국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추진 중이다. 보도에 따르면 네 갈래다. 연봉 5억원 이상 등기임원의 보수를 공개하고, 대기업의 내부거래는 모두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부당’ 내부거래로 간주하며, 대기업은 적자와 구조조정에 시달려도 하도급 대금은 결코 깎아선 안 된다는 등의 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또 그룹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0%를 넘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줄 경우 명확한 증거가 없어도 총수가 지시한 것으로 추정해 징역형을 부과하는 동시에 일감 몰아주기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당사자인 총수가 직접 입증하라는 개정안도 논의 중이다.

 하나같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엄청난 법안들이란 점에서 대단히 걱정된다. 물론 대기업 집단의 일감 몰아주기와 납품단가 인하 관행에 잘못된 점이 없다는 건 아니다. 굳이 경제민주화란 이름을 빌리지 않더라도 불공정거래의 차원에서 진작 시정돼야 했던 것도 있다. 정부가 그동안 제 역할을 하지 않았기에 중소기업과 영세업자에 피해를 준 사례도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금 논의 중인 법안들은 너무 지나치다. 시장경제시스템에 위배되거나 그룹 체제의 장점을 일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모든 내부거래가 부당하다면 수직계열화와 이를 통한 내부거래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그룹체제의 강점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하청업체들은 납품단가 인상을 요청할 수 있는 반면, 대기업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인하할 수 없다는 건 시장경제시스템에 위배된다. 증거가 없는데도 벌을 주고, 죄가 없다는 걸 당사자더러 입증하라는 건 국회 입법권의 남용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공약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다”며 “무리한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지적한 건 시의적절했다. 아무리 목적이 옳아도 방식이 잘못돼선 안 된다. 하물며 지금은 경제 살리기가 시급한 때다.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판에 지나친 경제민주화 조치로 재계가 등을 돌리는 사태가 발생해선 안 된다. 국회는 이런 우려를 깊이 새겨 차분하고 냉정한 마음으로 경제민주화를 다루길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