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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창업, 패자부활전을 허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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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
다산네트웍스 대표

창업에 대한 실패를 용인하고, 실패 경험을 자산화하는 ‘패자부활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 정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3일 기획재정부가 사업에 실패한 중소기업의 체납세금 납부를 유예하는 ‘국세납세 마일리지 제도’ 등의 재기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과 금융업계, 학계가 참여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이달 말까지 연대보증 폐지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창업자의 친척·친구 등 주변 사람까지 빚의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가는 ‘연대보증제도’는 창업 의지를 저해하는 독버섯·연좌제로 불리며 끊임없이 폐지가 주장돼 왔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히 새 정부가 이를 뿌리 뽑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희망을 가져본다.

 금융위가 밝힌 연대보증 폐지 방안은 각 금융회사의 여신업무관리규정에서 연대보증을 원칙적으로 없앤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5월 개인사업자에 대한 시중은행과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의 연대보증 폐지를 전면 도입한 데 이은 조치다. 저축은행 등 제2 금융권으로 연대보증 폐지를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연대보증제도 개선 내지 폐지는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대책이 어김없이 등장했었다. 문제는 이런 노력이 금융권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벤처와 같은 기술기반 창업 기업에 대해서는 기술금융제도, 즉 기술을 담보로 한 신용대출 시스템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가치가 우수한 기업을 선별해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가입기업들이 납부한 보험료를 활용해 부도 발생 시 보험금 지급을 통해 금융기관 손실을 보전하는 기술가치보험제도의 도입도 검토해볼 만하다. 기존 제도가 기술가치를 고려해 보증을 제공하고 부실 발생 시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인 반면, 보험제도는 정책보험기관을 통해 기업 도산 때 금융기관의 손실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발달된 기술가치평가 시스템 확충이 선결과제다. 기술력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은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의 금융지원뿐만 아니라 인수합병(M&A) 및 기술이전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근본적인 벤처 생태계 개선을 위해서는 기술창업 기업의 회생과 재도전을 위한 다각도의 창업 지원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신용회복제도, 체납세금 감면제도 등 사후적으로 실패에서 재기할 수 있는 제도를 종합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실패한 기업의 자산이 사장되지 않도록 M&A나 기술이전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벤처 창업이나 신제품 개발을 통한 새로운 사업에의 도전은 그 성공 확률이 아주 낮은 것이 통계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성공 확률은 낮아도 그 성공의 결과는 엄청나게 크다. 한두 개 성공의 결과물이 다른 모든 실패의 비용을 메우고도 남는 그런 사업모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벤처 창업은 기본적으로 융자가 아닌 투자 중심으로 생태계가 돌아가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실패가 다반사고 성공이 예외적인 곳에서 은행 빚을 빌려서 사업을 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얘기다. 투자 중심의, 실패가 용인되고 자산화되는 벤처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에인절 투자와 벤처캐피털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 그리고 훌륭한 사업계획을 가지고 있더라도 지금처럼 실패에 대한 부담과 벌칙이 큰 사회적 환경에서는 창업에 나선다는 것이 쉬운 결정이 아니다. 창업가들에게만 용기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기업가에게 과도하게 위험을 전가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을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벤처 창업가는 통상 서너 번의 실패를 거쳐 성공한다는 통계가 있다. 서너 번의 실패를 밑거름으로 다시 도전하는 사람은 그만큼 성공의 가능성에 한발 더 다가가는 셈이다. 창조를 위한 도전 끝에 맛보는 실패가 지탄의 대상이 아닌 재도전을 위한 자산이 될 때, 우리 사회는 창조경제 사회로 한발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다산네트웍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