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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레이디」에의 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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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통령 선거가 마지막 고비에서 열을 뿜는 동안 여·야 대통령 후보자의 부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또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 후보자인 부군을 위하여 어떻게 노력하고 있을까. 공화당후보 박정희씨 부인 육영수 여사와 신민당후보 윤보선씨 부인 공덕귀 여사를 찾아본다.
여린 배추 빛으로 신록이 돋아나고 빨간 철쭉이 화사하게 핀 청와대에는 남녀노소 상춘객들이 줄지어 밀려들고 있었다. 「핑크」빛으로 꾸며진 대통령 부인 접견실은 남쪽 창을 활짝 열어 두었지만 간간 꽃구경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릴 뿐 한가롭고 조용했다.
『선거하는 집 같지 않지요? 우리의 생활은 선거 때나 그 이전이나 별반 다름이 없어요.』
선거를 위해서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음을 강조하는 육 여사는 흰 갑사 치마 저고리에 파란 옥가락지를 받쳐 끼었고, 역시 이 옷을 입어야 마음이 가라앉고 편하다는 말도 했다.
육 여사는 첫 유세를 떠난 대통령을 뒤쫓아 몰래 대전까지 가서 청중 틈에 끼었다 들키기도 했고, 청주 유세 때는 함께 따라나서 보는 등 부인으로서의 조바심을 보았으나 흰 갑사 치마 저고리로 차분히 앉은 모습에서는 그런 기미가 없다.
육 여사는 그 동안 대통령 부인으로 많은 일을 해 왔다. 양지회에서 하는 계속 사업은 할 수 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도 선심공세라 오해받을 수도 있어 실천에 옮길 수 없다는 고충을 말했다. 『자유 분위기에서 공명선거가 이루어지리라고 믿어요. 유권자들이 전보다 얼마나 현명해졌어요? 무슨 속임수나 강요는 통할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육 여사는 여성 유권자들도 가정 생활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정치에 좀 더 관심을 가져, 정말 나라 살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을 가려내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일시적인 유세나 「붐」에 따르는 것보다 평소에 하는 일을 관심 있게 살피고 자기의 판단으로 한 표의 권리를 바르게 행사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육 여사는 다시 신임을 받게 되면 어린이와 여성들에 대한 자신의 꿈을 좀더 구체적으로 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농·어촌과 낙도 어린이들에게 중점적으로 보내고 있는 어린이 문고 운동을 계속하고 가을까지는 도청 소재지마다 완공되는 여성회관을 토대로 농촌여성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정치·경제·문화 모든면으로 농촌과 도시와의 차이를 없애고 서로 가까워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처럼 농촌 여성과 도시 여성생활이 여러모로 가까워져야 되겠다는 것이다.
육 여사는 이를 위한 몇 가지 계획을 말해준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경제적인 능력을 키워 주기 위해서 가축 기르기와 수공예를 보급하는데 주력하고, 이게 실험이 끝나가는 피마자잎과 개가죽 나뭇잎으로 기를 수 있는 누에고치를 장려할 생각이다.
『농촌 처녀들이 무작정 도시로 나와 때로는 사람 이하의 대접을 받는 생활을 하는 것을 볼 땐 정말 가슴이 아파요.』
그저 도시로 못 가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일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많은 유휴 시간을 가진 중류이상 가정의 부녀들은 지역사회나 그 밖의 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동원되어야겠다는 말도 했다.
『국민학교 교실 보내기 운동도 하고 싶어요. 정부만 믿을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힘을 모으면 부족한 교실쯤 문제없을 지 몰라요.』
「테이블」의 홍차가 싸늘하게 식는데 육 여사의 공명선거에 대한 기원과 앞으로 이룩해야할 꿈 얘기는 점점 더 열을 띠어갔다.
『이번 선거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역사적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도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전통을 세워보려는 유권자들의 결의를 나 스스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격무에서 돌아오는 남편이 가정에서 피로를 풀 수 있도록 마음쓰는 주부의 역할밖에 하는 것이 없다는 공 여사다.
『자신의 주권 행사에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공 여사는 여성 유권자들에 대한 기대가 컸다. 여성들의 힘이 바르게 표현될 수 있다면 민주 발전이나 나라 살림이 사뭇 달라질 거라는 것이다.
매일같이 남편을 위해 조석으로 신문을 읽어주고 틈나는 대로 산책에 동행하는 일이 그의 일과중 소중한 시간임을 말하는 공 여사는 산수유와 완자무늬가 잘게 놓인 보라색 「실크」 치마 저고리에 자마노 「브로치」가 저고리 앞깃을 단정하게 여미고 있었다.
안국동 깊숙이 자리잡은 윤 후보댁은 절간 같이 조용했다. 거목으로 자란 산다화가 구름처럼 피어있고 나무를 자르는 정원수의 가위소리가 「라일락」 꽃향기를 싣고 들려왔다.
『그분은 술과 담배를 안 하십니다.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이 이즈음과 같이 심한 유세 여행을 이겨 계속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해요.』
나이에 비하여 건강한 윤 후보에게 특별한 건강을 위한 비결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가루음식을 즐기는 것이 도움이 되었을까. 점심은 으레 국수고 아침에도 식빵이 아니면 집에서 마련한 찐빵으로 식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가만 있으면 정원의 나무와 화초를 손질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공 여사는 지금과 같은 대통령 책임제는 아니었지만 과거 1년 7개월 동안 대통령 부인으로서 청와대에서 지냈었다. 만일 이번에 당선이 된다면 대통령 부인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지금의 생활에서 크게 변화가 오지는 않을 거라 했다.
『나야 항상 가정부인이니까 가정을 지키는 것이 주가 될 거예요.』 주부로서의 책임을 다한 다음 시간이 있으면 교회 일을 돕고 어려운 사람과 어린이 그리고 여성들의 생활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공 여사는 어느 시기든 주부의 입장을 떠나지 않을 것을 밝혔다. 화사하게 핀 군자란과 공작 선인장 꽃이 고풍으로 꾸며진 응접실에 어울렸고 거기서 공 여사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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