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치료 통해 문제아 바르게 이끄는 경찰 되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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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한 박성인 경사(왼쪽)와 최정인 경장이 수업에 쓰인 자료들을 살펴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왕따 청소년이나 성폭력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 미술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한 두 경찰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아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계(이하 여청계)소속 박성인(36)경사와 최정인(31·여)경장. 이들은 바쁜 업무 중에도 틈틈이 아산우리가족상담센터(소장 윤애란)를 방문해 미술치료를 배웠다. 일주일에 두 번씩 총 120시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이들은 미술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업무를 하는데 있어 큰 도움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2일 이들 경찰을 직접 만나 미술치료를 배운 계기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문제아에게 경찰이 아닌 형으로 다가가요”

박 경사는 미술치료사 자격증을 딴 뒤부터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경찰이 된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경찰서를 찾는 비행 청소년들이나 왕따 피해를 입은 학생들에게 늘 형식적인 수사만 진행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치료사 자격증을 딴 뒤부터는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한다.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라고 한 뒤 그 그림을 토대로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고 상담해주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예전에 학교 폭력 가해자 학생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어요. 큰 나무에 뿌리를 크게 그리더군요. 그 그림을 통해 어린시절 예전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상처가 많은 아이일수록 나무보다 뿌리를 더 크게 그리는 경향이 있거든요.”

 박 경사는 경찰서 내 상담뿐 아니라 그 아이들의 사후 관리에도 신경 쓰고 있다. 아이들이 나쁜 마음을 가질 수 없도록 꾸준히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혹시나 또 엇나가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직접 가정을 방문해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박 경사가 내민 손길에 아이들은 하나 둘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경찰’이라는 말만 들어도 도망가고 대답도 잘 못하던 아이들은 이제 박 경사를 ‘형’이라 부른다. 힘든 일이 있으면 먼저 연락해서 박 경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박 경사는 무조건 무거운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주위 사람들과 달랐다. 경찰서를 한번쯤 거쳐간 아이들의 힘겨웠던 삶에 관심을 가졌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림치료사 자격증은 저에게도 큰 변화를 줬어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함께 얘기를 나누면 쉽게 친해질 수 있어요. 사후관리에도 힘쓰게 된 것은 단순한 ‘의무감’이 아니라 저를 거쳐 갔던 아이들이 올바른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주고 싶은 ‘책임감’때문이에요.”

 또한 그림치료는 박 경사에게 큰 동기부여를 줬다고 한다. 어렸을 적 TV에서 소매를 걷어 부치고 시민들을 도와주는 경찰을 봤을 때부터 ‘아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찰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던 박경사는 그 동안 신속한 업무 처리에만 신경을 써왔다. 자신이 처음 가졌던 다짐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치료를 접하면서 제가 ‘왜 경찰이 됐는지’를 다시 깨닫게 됐어요. 앞으로도 그림치료를 통해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는 경찰이 되고 싶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심리파악에 도움

최 경장은 경찰이 된 지 이제 갓 1년이 넘은 새내기(?)여경이다. 그는 아산경찰서 여청계에서 청소년 생활지도뿐 아니라 ‘성폭력 전담반’도 맡아 운영 중이라고 한다. 그에게 있어 그림치료는 흥분한 상태의 피해자 심리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절차가 됐다.

 “두려운 마음에 그 당시의 사건을 잘 얘기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대부분이에요. 이들에게 그림을 통해 접근하면 지금 심정이 어떤지 사건 당시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어요. 차분해진 마음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보다 쉽게 사건 처리가 가능하죠.”

 최 경장 역시 주말을 이용해 그동안 친분을 쌓았던 피해 여성들을 만나며 사후 관리를 꼼꼼히 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상처가 빨리 치유될 수 있도록 ‘언니’, ‘동생’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친근한 경찰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그들이 필요할 때 마다 다가가 얘기를 들어주기도 한다.

 성폭력 피해자뿐 아니라 경찰서를 찾는 청소년들에게도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미술치료사 자격증 이외에도 학교폭력 상담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는 열의를 보이고 있다.

 “비행 청소년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 학교폭력 상담사 자격증도 땄어요. 자신의 위치를 만족하지 않고 노력하는 경찰만이 더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 경장은 청소년들이 일으키는 사건들을 접하면서 학교 폭력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 학생들의 상당 부분도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부모가 안 계시거나 생활 형편이 어려워 폭력을 당해도 말을 못하고 밖으로 겉돌면서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던 것이다.

 “학교 폭력에 대해서는 가해자가 없습니다. 모두가 피해자라고 생각해요. 성폭력 피해자들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따뜻한 ‘누나, 언니’로 도움을 주고 싶네요.”

 박 경사와 최 경장에게 미술치료 수업을 진행했던 윤애란 아산우리가족상담센터소장은 “경찰은 ‘무서운 존재’가 아닌 ‘시민을 돕는 친근한 존재’다”라며 “바쁜 와중에도 자신의 업무를 더 열심히 하기 위해 미술치료사 자격증을 딴 이들 경찰이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데 일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조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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