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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서 40년째 한학 가르쳐 “공교육에 꼭 필요한 학문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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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배방에서 서당을 운영하는 동시에 한학을 연구하는 임용순 선생이 자신의 서재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비롯한 첨단기기가 판치는 요즘 시대에도 여전히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채 한학자 후계 양성을 위해 노력하는 이가 있다.

아산 배방읍에서 서당을 운영하는 임용순(84)선생이 그 주인공. 임 선생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한학을 배우러 오는 이들을 정성껏 지도하고 있다. 천안과 아산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한학의 대부’로 입 소문을 탄 그를 지난 9일 만나 그간의 사연과 공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짚어봤다.

“부생아신(父 生 我 身·아버지 날 낳으시고) 모국오신(母鞠吾 身·어머니 날 기르셨네)~”

 이날 오후 2시. 임 선생을 만나기 위해 그의 거처를 찾았을 땐 한 중년 남성이 한학 수업을 받고 있었다. 수업을 마친 뒤 중년남성은 임 선생을 향해 큰절을 했다.

 “또 찾아 뵙겠습니다. 선생님.”,

 “그래. 조심해서 올라 가시게.”

 수업을 받은 중년 남성은 수원에서 임 선생에게 수업을 듣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임 선생을 찾아올 정도로 열성적이다. 이 밖에도 서울을 비롯한 타 지역에서 10여 명의 제자들이 아직도 임 선생에게 꾸준히 한학 수업을 듣고 있다고 한다.

 “세상 참 좋아졌지. KTX를 타면 천안아산에 30분만에 오니까 말이여. 그래도 내 수업을 듣기 위해 이렇게 찾아와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지.”

세월의 역경 딛고 인재육성에 노력

임 선생의 거주지는 원래 천안 풍세면에 있었다. 호는 ‘경화’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를 ‘경화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속세에 때묻지 않은 마음으로 전통을 지키며 살아왔다. 임 선생은 어려서부터 조부와 부친에게 사자소학·추구·동몽선습·격몽요결·명심보감 등 한문의 기초를 배웠다. 생계가 어려워 30세 때부터 40세까지 농사를 본업으로 삼은 적도 있었지만 사서삼경 등을 익히며 계속 한학의 전통을 이어갔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생활이 많이 궁핍해졌었지. 공부만으로는 생계를 책임질 수 없었어.”

 그 후 그는 서울에 있는 역사 연구소에 부름을 받아 국사편찬 왕조실록 변역 등의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45세 때부터 다시 고향인 풍세에 내려와 한학을 배우고 싶어하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서당을 열었다고 한다. 증조부부터 운영해온 서당을 이어받아 다시 시작한 뒤 지금껏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한학이 외면 받고 있지만 영영 없어질 순 없다고 생각해. 한학은 우리 인간에게 꼭 필요한 학문이거든. 내가 한학을 연구하고 누군가에게 전수해주는 이유는 빛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야.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 때문이지.

풍세면 서당은 지난 2008년까지 운영돼 왔다. 2009년부터 거처를 배방으로 옮기게 된 것에는 그의 나이가 고령으로 접어들면서 건강이 쇠약해져서 전통가옥에서의 생활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무렵 자신이 간직하고 있었던 오래된 서적들을 도난 당한 사건도 거처를 옮기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서간문·낙관·연적 등과 내가 직접 집필한 책들을 훔쳐갔지. 수업을 하고 있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라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마당을 나가보니 키우던 2마리의 개들이 죽어있었지.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거야. 사람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지 뭐 다만 나에게는 꼭 필요한 책들인데 그들에게는 돈 벌이 이외에는 전혀 필요 없는 것들이거든 그게 속상하지. 경찰서에 신고도 해봤지만 보통 그런 서적은 10년이 훌쩍 지나야만 은밀히 유통된다고 하더군.”

공교육에는 없는 인성교육 한학에는 있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던 임 선생에게도 특별히 기억나는 제자가 있다고 한다. 바로 7년 전 지체장애를 갖고 있던 한 중학생이었다. 임 선생은 이 학생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사랑과 정성으로 한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자신의 집을 혼자 찾아가기도 어려워했던 그 학생은 임 선생의 가르침으로 원광대학교 한자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공직자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침을 잘못 맞고 소아마비가 됐다고 해. 참 딱했지.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공교육이 아니었어. 율곡 선생님이 쓰신 경문요결을 바탕으로 인성을 길러줬지. 잘 이해하지 못하면 무조건 반복해서 가르쳤어.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상태가 좋아지는 모습을 보니 참 뿌듯했지.

 이 학생뿐 아니라 임 선생의 서당을 처음 오는 아이들은 낯선 환경과 그동안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강독을 통한 한문공부, 엄한 예절교육 덕에 종종 겁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곧 이런 교육방식에 적응해 공교육에서는 잃어가고 있는 충(忠)·효(孝)·예(禮)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게 된다는 게 임 선생의 설명이다. 또한 일반 학교에서는 체벌이 전면 금지돼 있지만 임 선생은 아직도 어린 제자들에게 종종 회초리를 든다고 했다.

 “교육은 순간의 깨우침이 아니라 사람들의 혼을 바로 세워주는데 그 목적이 있는 거여. 요즘 선생님들은 그런 점에서 사명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나 때리는 것이 아니라 잘 될 사람만 때리는 게 스승의 도리라고 생각해. 아이들이 사회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규범과 학문의 자세를 바로잡게 하기 위해 최소한의 체벌은 필요하지.”

 임 선생이 서당을 운영하는데 있어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제자들이 한학에 대해 재미를 느끼고 스스로 공부하는 자세를 보일 때라고 한다. 소소하지만 이런 보람을 느낄 때 한학 서당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또 임 선생은 수업비를 따로 정해놓지 않았다. 그냥 정성이 깃든 사례비를 받는 것에 충분히 만족한다고 한다.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한학을 배우고 싶으면 언제든 우리 서당의 문을 두드려 줬으면 좋겠어. 나로 인해 누군가 한학의 매력에 빠지면 그걸로 만족하지 뭐.

 그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공교육에도 일침을 가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정작 중요한 ‘인성교육’은 소홀하다고 지적한다.

 “옛날 소학교 시절에는 아이들에게 청소부터 가르쳤어. 정리정돈을 하며 인성의 기초를 익히라는 의도였지. 요즘은 학교가 ‘공부만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교육관계자들이 한학은 공교육에 꼭 필요한 학문이라는 것을 알아줬음 좋겠어.”

아버지 뜻 이어받아 한학 공부하는 셋째 아들

현재 임 선생의 한학 정신은 셋째 아들인 임영식(39)씨가 이어받았다. 임씨는 원래 이공계열 쪽 진학을 생각했지만 임 선생의 권유로 전공을 바꿨다고 한다. 성균관대 한문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는 아버지를 모시고 배방에서 함께 살고 있다.

 “삼형제를 뒀는데 내 뒤를 이어 한학을 계속 공부하고 서당까지 운영해줄 녀석이 필요했지. 셋째의 경우 예전부터 한문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서 내 뒤를 이을 것을 권유했어. 한편으론 미안하면서도, 조상대대로 이어오는 한학 정신을 계승하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

 셋째 아들 임영식씨는 “한학을 전공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며 “아버님의 뜻을 이어받아 한학을 배우고 있는 것에 오히려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아버지의 말씀대로 한학을 계승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글=조영민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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