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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식품 척결 정책이 성공하려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불량식품은 작년 12월 대통령 공약으로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범’과 함께 4대악으로 규정, 이를 척결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면서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불량식품’ 자체의 의미와 대상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르다. 화두를 던진 정치인,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 산업 종사자와 전문가, 소비자 등 이해 당사자들마다 제각각이다. 그러나 보건범죄인 “고의적 식품사범” 즉, 부당이익을 노린 악덕 식품제조·판매자를 염두에 둔 것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정부의 ‘불량식품과의 전면전’ 선포에 식품산업계는 불안에 떨고, 국민들은 안전한 식탁을 상상하며 환호하고 있다. 식품안전 선진국으로 가는 올바른 방향에는 공감하나 그 뒷맛이 개운치 않고, 우리나라가 이 지경이 된 이유를 생각해 봤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광우병, 불량만두사건, 멜라민사건, 새우깡생쥐머리사건, 중국산김치 사건, 납꽃게, 수입식품파동 등 대규모 식품사건이 많이 발생했었다. 부정·불량식품 신고 및 단속 적발 건수도 꾸준히 증가돼 왔다. 그렇지만 전 세계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식품안전 사건 발생에 있어 수적으로나 규모면에서 소위 ‘먹는 것으로 장난을 가장 덜 치는’ 착한 먹거리의 대표 국가였다.

식품위생의 역사는 법과 규제로 시작된다. 식품(食品)이 상품(商品)이 되어 상거래되면서 양과 질을 속이고, 불건전하고, 인체에 해를 끼침에 따라 법과 규제가 만들어졌다. 중세 유럽과 중국 등 식품교역이 활발했던 곳에서는 어김없이 무게조작, 불량기름, 상한고기, 석회암 혼입 밀가루, 불법 첨가물 등 식품상행위 관련 부정행위가 빈발해 규제가 시행되었다. 미국 또한 230년 역사에 불과하지만 병에 걸리고 부패한 고기의 판매 처벌을 시작으로 200여종의 법령이 제정됐다. 식품안전 최고 선진국인 유럽연합(EU) 또한 여전히 말고기스캔들, 유기농계란 등 양심을 속이는 식품사범이 계속되고 있고, 중국 역시 자국산 우유를 국민들이 외면할 정도로 불량식품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우리나라는 식품위생 관련 법령이 가장 늦게 갖추어진 나라다. 비록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만 「식품위생법」은 약 40년 전인 1962년에야 만들어졌고, 이 무렵 미국에서 시작된 PL법(Product Liability, 제조물책임법) 또한 필리핀(1992), 중국(1993년)보다 늦은 2002년에야 시행돼 세계에서 가장 늦었다. 관리행정체계 또한 15년 역사에 불과한 식약청 역사를 보듯 가장 후발 주자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식품위생후진국이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거래 시 속이는 행위가 가장 적은 세계최고의 양심 국가였다. 이는 중세 유럽이나 중국처럼 전쟁, 유목민, 다민족 사회가 아니라 한 마을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사는 씨족사회이고 온순한 민족성 탓에 식품상거래 시 덜 속여 법과 규제가 크게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고의적 후진국형 사범이 급증, 불량식품 문제가 도를 지나치고 있어 정부가 척결 대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이들 대책은 식품위생법상 형량상한제로 돼 있는 불량식품 처벌조항을 살인 등 일부 중죄에 한해 적용되고 있는 최저형량제로 적용, 매출액의 10배를 환수하는 ‘이익몰수제’, 3회 이상 상습적 식품범죄 업체의 명단을 공개하는 ‘블랙리스트제’, ‘식품이력추적제’, ‘식품안전인증제(HACCP)’ 확대, ‘범정부불량식품근절추진단’ 가동 등 생산자 책임을 강화하는 추세인 글로벌 식품안전 트랜드를 따르고 있다. 이는 최근 미국이 「식품안전협대화법」을 강력하게 시행중인 것과 때를 같이한다.

신정부가 추진할 ‘불량식품 척결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인이 필수다. 첫째, 안전한 식품만이 생산, 제조, 유통되도록 하는 ‘생산자의 노력’이다. 식품 생산․제조․수입업자가 고의적 식품사범의 유혹을 뿌리치고 철저한 안전관리 노력을 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처벌이 약하고 PL법이 자리를 잡지 못해 식품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단기에는 강한 처벌과 강력한 행정조치가 위력을 발휘할 것이나, 장기적으로는 내 자식이 먹는 음식이라는 산업계 스스로의 건전한 시민의식을 유도하는 교육과 켐페인이 필요하다.

둘째, 강력하고 효율적인 ‘정부의 안전관리제도’다. 새 정부는 불량식품 척결 선언의 첫 작품으로 ‘식약처’를 출범시켰다. 바로 다원화된 행정체계를 통합, 효율성을 높여 제한된 자원 활용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식약처의 성공적 자리메김이 불량식품 척결의 첫걸음인데, 농식품부를 위시 그 간 안전을 분산관리해 오던 5개 부처는 힘을 합쳐 부처이기주의, 칸막이 행정을 타파해야 할 것이다. 식약처의 성공요인은 ‘국민의 존경과 신뢰받는 기관 구축’, ‘28개 관련 법과 정책의 유기적 통합 조정’, ‘과학에 근거한 전문행정기관 위상 강화’, ‘사고 발생 시 긴급대응체계 구축’, ‘국내외 산학연관 네트워크 구축 및 소비자와 소통 강화’ 등에 있다고 생각된다.

셋째,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소비자의 참여다. 그 간 소비자는 식품안전문제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부족했다. 소비자는 무조건 값싼 식품만 찾지 말고, 원산지, 유통기한, 영양소 함량, 첨가물 등의 정보를 알려 주는 식품표시를 반드시 확인하고, 문제 발생 시 신고하는 습관을 갖고, 올바른 식품 구매요령을 숙지해 똑똑하고 용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불량식품을 척결하기 위해서는 법과 규제가 가장 중요하다. 정부의 노력이 그 성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나 생산·판매자의 협조 노력과 윤리의식, 소비자의 단결과 실천이 덧붙여져야만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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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도교수 기자 sangdoha@cau.ac.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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