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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내부시설 기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문교부는 8일, 현행 대학 설치 기준령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쳐, 앞으로는 종합대학과 단과대학별로 각각 별도의 시설 기준령을 마련하는 한편, 새로이 그 내부시설 기준을 법령으로 제정키로 했다고 전해진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당국은 55년8월4일 처음 제정됐던 현행 대학설치 기준령이 교지·교사·체육장·도서관등 주로 외형적인 시설기준만을 강요한 나머지, 국내 대학이 외괄적으로만 비대해진 반면, 정작 충실했어야 할 내부의 실험·실습시설 확보 등에는 전혀 무성의했다는 사실을 그 이유로 든 것으로 전해졌다.
6·25사변 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국내의 일부 대학들이 그 뒤 불과 10여년 만에 외형적으로는 가히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할 만한 「메머드」교사를 건축하여 허세를 떨치게 된 반면, 정작 유념했어야 할 충실한 내부시설의 확보, 우수한 교수진의 양성과 그 생활대책 수립, 그리고 참다운 학구적인 분위기의 조성 문제 등 가장 본질적인 대학의 질적 향상 문제에는 오히려 외면을 일삼아 왔음을 이제 주지의 사실로 돼있다. 이런 한에서 문교 당국자가 대학의 외적 및 내적 시설에 대하여 보다 철저한 기준을 설정하고, 그 여행을 규제하려는 의도는 원칙적으로 하등 나무랄 바가 못 될 줄로 안다.
그러나 한편 깊이 생각하면 당국은 이와 같은 기도가 반드시 법령의 정비만으로써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심히 의아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내부 시설의 기준에 관하여는 현행 대학설치 기준령 제11조3항에도 언급이 있어, 만일 당국이 그와 같은 기준 달성을 반드시 실현시키겠다는 성의만 있었다면 그 기준은 이미 오랜 전에 성취됐었으리라고도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과거 수년간 문교당국자가 이와 같은 기준의 설정에 관하여 관계전문가들로써 구성된 위원회를 조직하고, 그러한 자료 수집에 적지 않은 노력을 경주해왔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학과 수만도 70개, 전공분야별로는 수백, 수천의 다양스러운 교과내용을 가진 것이 대학교육의 특성이고 보면 더군다나 거기에 일진월보 하는 추세에 발맞출 수 있는 대학내부시설의 기준을 성문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며 또 설사 가능하다 해도 그것은 필경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에는 별로 큰 의의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문교 당국자로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모든 대학 당국자가 명실 공히 대학다운 대학의 시설확보를 위하여 진심으로 총력을 경주 할 수 있는 원천적인 바탕을 조성하는데 참다운 감독권을 행사하고 기술적·세부적인 시설기준은 이를 대학 당국자의 자체적 규제에 맡기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재단과 대학의 운영상황, 재정실태 등이 언제까지나 비밀의 장막 속에 가리워 지고, 교육법에 명시된 교수의 정원이 전적으로 무시된 채 대학교수들이 그나마 수준이하의 박봉으로 「보따리 장사」에 만 몰두하고 있는 현 실정을 그대로 두고서 대학의 내부시설 확보문제나 교육의 질적 향상을 운위한다는 것은 오히려 잠꼬대에 불과할 것이다. 문교당국은 노력은 많되 실효를 기대할 수 없는 문제에 정력을 낭비하기보다는 오히려 보다 손쉽고, 더욱 근본적인 대학운영개선책의 수립에 그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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