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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 1966년 … 달동네 장기려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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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부산시 동구는 1일 초량동에 장기려 박사 기념관 ‘더 나눔’ 센터의 준공식을 한다. 고 장기려 박사는 이곳에서 800m 떨어진 자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 의료보험조합 ‘청십자 의료협동조합’을 열었다.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생전 장 박사의 뜻을 따르는 차원에서 앞으로 지역 6개 병원은 이곳 건강나눔센터에서 달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펼친다. [송봉근 기자]
장기려

부산시 동구 초량동 500번지.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고 장기려(1911~95) 박사가 1968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 의료협동조합’을 열었던 곳이다.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 거리에 있는 이곳은 현재 목욕탕으로 변해 있다. 부산시 동구는 이 건물을 사들여 장기려 박사 기념관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건물주와 협의가 되지 않아 포기했다.

 대신에 여기서 800m쯤 떨어진 중앙공원 아래쪽 산복도로변인 초량동 856-31번지에 장기려 박사 기념 ‘더 나눔’ 센터를 짓고 1일 준공식을 한다.

 부지 709㎡에 2층(건물면적 383㎡)으로 지어진 이 센터 건립에는 7억5000만원이 들었다. 개관날짜는 4월 1일. 장 박사가 조합을 세우고 환자를 진료했던 복음병원 초량분원이 문을 연 66년 4월 1일에 맞춘 것이다.

 장 박사의 유품과 사진, 영상물로 봉사의 일생을 살펴보는 전시관, 동화책 도서관, 건강나눔센터 등 6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유품은 별것이 없다. 의사 가운, 청진기, 의사 면허증, 논문, 노트가 전부다. 정영석 동구청장은 “평생 검소하게 생활하신 분이라 유품을 남긴 것이 거의 없어 수집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장 박사는 노년에 “죽었을 때 물레밖에 남기지 않았던 간디에 비하면 나는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말했었다.

 건강나눔센터에서는 봉생병원, 일신기독병원, 문화병원 등 지역 6개 병원이 돌아가며 달동네 주민을 무료 진료하면서 장 박사의 의료봉사를 이어간다. 또 치매 예방과 정신건강 상담, 주변 고지대 주민 낙상 예방과 근력 강화 교육 등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평북 용천 출신인 장 박사는 32년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50년 12월 월남했다. 부인과 5남매를 북에 둔 채 둘째 아들만 데리고 피난 수도인 부산으로 왔다. 북에 둔 아내와 가족을 그리며 독신으로 살았다. 대한적십자사가 장 박사를 남북 이산가족 만남의 대상으로 선정하려 했으나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1000만 이산가족 모두의 아픔이 나 못지않을 텐데 어찌 나만 가족 재회의 기쁨을 맛보겠다고 북행을 신청하겠소”라며 거절했다.

 장 박사는 이후 복음병원장(1951~76), 청십자 병원장(1975~83), 부산아동병원장(1976), 부산 백병원 명예원장(1983)으로 인술을 폈다. 그는 복음병원장 시절 치료비를 낼 수 없는 환자에게 병원 뒷문으로 도망치도록 일러주거나, 가난한 환자를 위해 병원을 설득해 치료비를 내지 않도록 했다. 58년에는 현 서구 토성동 부산대병원 뒤쪽에 행려병자 진료소를 차려놓고 3년간 무료 치료했다. 그 다음해에는 국내 최초로 간 대량 절제술에 성공하는 등 국내 의학 발전에도 기여했다.

 장 박사가 세운 청십자 의료협동조합은 89년 국민 의료보험제도로 발전했다. ‘이 땅에 돈이 없어 치료 못 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그의 뜻이 실현된 것이다.

 장 박사는 79년 막사이사이상, 95년 인도주의실천의사 상을 받았고, 2005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봉헌됐다.

글=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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