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공약 두 토끼 잡기 … 20조 더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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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동 경제수석이 29일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조 수석은 “올해 세수결손을 방치할 경우 하반기 재정절벽 같은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정부가 재정절벽 위기까지 거론하며 추가경정예산(추경) 필요성을 강조한 데엔 다목적 카드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첫째는 이명박(MB) 정부와의 선 긋기다. 정부는 세입 부족이 추가경정예산 편성의 주요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MB 정부가 애초부터 부풀려진 경제전망을 바탕으로 잘못된 장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새 정부의 부담이 커지고 경제를 살리려는 노력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게 된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브리핑에서 세수 결손 현황과 관련해 “총 12조원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며 “작년 예산심의 당시 금년도 경제상황 악화 전망으로 예상됐어야 할 세입감소가 예산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웬만하면 세수 결손을 정부가 그냥 안고 갈 수도 있겠지만 지난 정부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과다 계상을 해놓았다”고 지적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해 6월 처음 발표될 때 4.3%에서 28일 2.3%까지 떨어졌다. 9개월 만에 반토막 난 것이다.

 산은금융지주와 기업은행 민영화 중단을 기정사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민영화 중단에 따른 6조원의 세입감소를 전제로 추경을 추진하고 있다. 은행은 물론 철도·공항 등 기간산업까지 민영화하려 했던 MB 정부와 다른 길을 가겠다는 신호다.

 추경 규모를 키워 예산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어려운 경제 현실을 강조함으로써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자금을 넉넉히 확보해 두려는 ‘엄살’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시각을 부정한다. “예상보다 심각한 경기둔화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성장률이 1% 떨어지면 세수는 1조~2조원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경제는 2011년 4월 이후 사상 처음으로 전기 대비 7분기 연속 0%대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올 들어서도 개선 조짐이 없어 8분기째 0%대 성장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저성장은 경제 부흥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 국정목표를 뿌리째 흔들 수 있다. 연평균 27조원(5년간 135조원)을 투입해야 하는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 이행에도 막대한 차질이 빚어진다.

 이런 복합 상황이 결국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배경이 됐다. 식어가는 성장엔진을 다시 달구면서 공약도 이행하는 수단으로 대규모 추경을 선택한 것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을 통해 하반기에는 성장률을 3%로 끌어올리겠다”며 “공약 이행도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 달 국회에 제출될 추경 규모는 세입 감소분 12조원에 세출증액분(α)을 더해 20조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이 액수는 2009년 28조4000억원에 이은 역대 둘째 규모다. 135조원에 달하는 대선 공약을 그대로 추진할 경우 재정 압박과 야당의 반대에 직면할 전망이다. 조원동 수석은 공약 재원과 관련해 “4월 말이나 5월 초 재원 마련 대책회의에서 자금 소요와 조달 방법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성대 김상조(경제학) 교수는 “어울리지 않는 재정절벽이란 말까지 내세우며 12조원+α를 얘기하는 것은 추경 명분 쌓기 차원으로 보인다”며 “결국 국채발행과 증세를 병행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글=김동호.허진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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