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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근대화 - 김중업<건축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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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칠궁의 일부가 헐린다고 들린다. 요사이는 문화재의 일대 수난기인가 보다. 근대화라는 구호 밑에 선인들이 남긴 알뜰한 유산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음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연전의 석굴암 개수며 석가탑 도괴사건, 고분 도굴사건, 중요문화재 해외반출사건, 남대문 개수 등. 덕수궁의 알뜰한 돌담은 헐고 공중변소의 철책 같은 저속한 악취미에다 그 속의 연못 둘레를 「콘크리트」로 띠를 돌리고 또 무엇이 모자란다고 왜색 짙은 석축을 쌓아 올려 더욱 어수선한 환경으로 개악하는 일들은 양식으로는 도시 판단이 안 간다.
그 뿐인가.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조원의 극치인 비원의 물받이들은 「콘크리트」로 개악되어 옛 멋이란 점차로 찾아 볼 길이 없다. 그런데 또 무엇이 모자란다고 칠궁의 일부를 털어 굳이 길을 내야 한단 말인가. 도시계획이란 길을 트고 구역정리를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공간정비지 평면수정은 아닌 것이다. 「요나·흐라이드맨」의 파리공중도시안 같은 차원 높은 「비전」은 가졌을 리 만무하겠으나 「로마」의 「코로세움」이나 「콘스탄틴」 개선문을 길이 우회하고 있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을 법도 한데 수 백년 이어받은 문화재를 덮어놓고 어떻게 헌다는 일에만 열중할 수 있겠는가. 고궁에는 딴 데서 찾아볼 수 없는 자체의 특이한 공간배치가 있고 이 조형문화재의 공간배치 자체가 문화사적 중요의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일이 있다. 4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경복궁에 종합박물관을 짓는다는 「빅 뉴스」인데 나라망신을 굳이 시켜야만 되겠다고 벼르고 있다니 말이다.
이조문화의 극치인 경회루와 근정전 옆에 법주사 팔상전,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등을 2배로 확대하여 「콘크리트」로 빚어 놓아 박물관입네하고 추악한 이물을 세워, 알뜰한 조형물의 힘찬 공간배치를 자랑하는 경복궁을 굳이 망치고야 말겠다는 일에는 무어라 형언키조차 곤란하다.
양식이 이렇게도 아쉬운 때가 또 있겠는가. 제발 손대질랑 말고 그대로 놓아나 두어 주었으면 좋겠다.
근대화작업이란 양식 있는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하고 민족주체성을 찾는 길은 옛 것을 제대로 아끼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함에 있는 것이지 다시 갓을 쓰고 상투를 기르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믿는다.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며 전통은 새로운 창조를 통하여 올바르게 계승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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