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이공」에서 제3신 - 서제숙 기자 단독회견|전쟁이 싫은 전쟁국의 「퍼스트·레이디」마담 「티유」와 하오를 함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서북「사이공」시 「보탕」가, 월남고급장교 관사촌에 자리잡은 「티우」국가 원수댁을 찾은 것은 하오5시, 가로수와 꽃과 파초 잎이 더위에 지쳐 늘어진 채 쏟아지는 햇볕에 졸고 있었다. 흰벽에 건평50평 가량의 아담한 2층집, 3백평은 넘을까, 나무와 꽃과 잔디가 곱게 가꾸어진 뜰이 남쪽으로 펼쳐 있다. 영관급 관사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철책 대문앞에서 눈이 크고 수려한 모습의 청년이 정중하게 맞아주었다.
안내된 현관 옆 응접실은 깔끔하게 정돈된 분위기. 붉은 응접「세트」엔 흰「레이스」를 가볍게 걸쳤고 자주 빛「카피트」를 반쯤 깐 나머지 마루 바닥엔 기름진 호피 한장이 위엄을 갖추어 펼쳐있다.
잔잔한 기념품들이 진열된 5층 탁자 위에는 「존슨」미국대통령의 사진이 놓여 있고 입구 오른편에는 박 대통령이 선사했다는 한아름짜리 자기화병에 「핑크」빛 월남매화가 화사했다. 「호스티스」의자옆에 놓인 남치마의 한국인형이 표정 없이 유리속에 서 있었다.
통역을 맡아준 한국교포 전영상(44)씨는 「티우」여사가 월남의 지도자부인중 월남인과 월남여성에게 친애와 존경을 받는 유일한 분임을 알려주었다.
「티우」여사가 가벼운 걸음으로 2층에서 내려왔다. 머리를 높고 풍성하게 지어 빗었다. 흰 바탕에 검정꽃무늬 「아오자이」를 검정 공단 바지위에 받쳐 입은 「티우」여사는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전형적인 월남의 상류부인. 수줍은 듯 「아오자이」앞자락을 만지며 조용하고 부드럽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기자의 질문에 열심히 대답했다.
『전쟁을 극복하기 위한 월남 여성들의 자세는 무엇보다도 가정을 원만하게 지켜 어려운 일을 맡은 남편들에게 걱정시키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티우」여사는 두남매(딸10세·아들8세)의 어머니이며 80이 넘는 시부모를 한집에 모시는 며느리다.
국가원수의 부인의 자격으로 하는 일은 「사병 보조회」(회원 3백여명)의 회장. 고급장성들의 부인들이 모여 하사관이하의 군인가족과 유가족·유자녀들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밝혔다.
특히 전쟁고아와 유족을 위해 「베드」4백개의 병원을 마련했고 앞으로는 그들의 교육문제까지 돌 볼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티우」여사 왼손에는 6∼7「캐럿」은 되어 보이는 「다이어먼드」반지가 반짝였고 흑산호 귀걸이가 칠빛으로 하늘거렸다.
「빈민」이나 「문맹자」는 아예 인종이 다른 듯이 생각하고 대한다는 월남의 상류사회의 한사람인 「티우」여사가 극빈자와 하사관이하의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 하는 일을 여러번 강조해서 말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전쟁에 관한 얘기 같은 것은 정치적인 것이니까 여자의 입장에선 말할 수 없다는 「티우」여사의 순진한 표정 앞에 전쟁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비참해지는가를 되물을 수는 없었다.
1961년 중매결혼을 했을 때 「티우」여사는 20세, 「구엔·반·티우」소위는 27세. 여러 가지 공무로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짧지만 가정의 화기를 위해 노력하는 남편을 정답게 여긴다는 「티우」여사의 활짝 웃는 모습에선 여인으로서의 자랑스러움과 행복감을 엿볼 수 있었다.
오전에는 대개 「사병 보조회」의 일을 보고 오후시간은 시부모와 아이들을 돌본다는 「티우」여사는 가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사이공」강변에서 낚시질을 즐기는 때도 있다는 얘기다.
「티우」여사는 신문잡지를 통해서 한국을 알수 있는 정도지만 기회 있으면 파월 장병에 대한 감사를 겸해서 남편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넓은 뜰에 나와 서로 다정한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티우」여사가 누리는 평화와 행복을 모든 월남여성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날을 바라는 서글픔이 마지막 타는 하오의 햇빛 아래 현기증처럼 나를 사로잡았다. <2월20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