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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대학생들의 무게 - 홍종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어떤 대학교 졸업식 날 운동장에 벌어진 허황된 풍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이들의 장래를 격려 편달하는 뜻에서 그들의 졸업을 기념하고 축하해주는 일은 마땅히 있음직한 기껍고 엄숙한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한 송이 꽃을 가슴에 꽂아주는 정도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도 하겠다. 학원에 남아있는 재학생 아우님들과 졸업장을 받아들고 교문을 나서는 형님들이 작별의 정을 나눈다든지 일가 친척과 친우들에 둘러싸여 격려와 축복의 인사를 나누는 일들은 모두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졸업예식의 옷이라고 엄숙을 뜻하는 검은「가운」위에 어설픈 싸구려 화환이니 울긋불긋한 종이「테이프」니 어석더석한 종이 목걸이들을 목에 걸고 다니는 광경이란 아무리 제멋대로 산다고 해도 남 보기에 자랑스러운 풍경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대학 졸업생이 아니냐. 국민학교, 중·고등학교를 거쳐서 대학을 나오며, 이제 나라의 기둥이 될 장정으로서 돌도 주무르고 무쇠도 깨물며 팔을 부르 걷고 어떤 고난이든 돌파해 나가야 할 실속 있는 일꾼이어야 할 것 아니냐. 그러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학사, 석사, 박사의 학위를 받는 의식을「코멘스먼트」즉 출발의「식」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일도 할 수 있고 공부도 학자다운 길을 개척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배우면 배울수록 아는 것보다도 모르는 것을 더 많이 발견하는 일이 곧 배우는 일임을 생각할 때 졸업의 광영을 축복 받는 그 날의 그 자리야말로 더 높은 배움의 문턱에서 자신의 부족과 무지의 부끄러움을 깨닫는 그 날이 아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배움의 길에는 보다더 큰 의문의 발견과 겸손의 태도가 있을 따름인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청소년들을 어떻게 하면 이 나라의 장래책임자로서 일을 감당해 나갈 힘을 길러주는데,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의 내용은 어떤 것이며 세계의 수준과는 어느 정도로 비교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유감 되는 일은 교육 내용이 뒤떨어져 있는가하면 또 한편으로는 교육과정에 따라갈 만큼 가르쳐 낼 시설과 능력의 부족이 크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을 학원 당국의 수고보다는 학생 자신들의 뛰어난 재질과 노력이 저녁하늘의 별처럼 하나 둘씩 총총이 빛나고 있다고 하여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예로는 외국에 유학간 우리네 학생들이 일찍이 가면 일찍이 업적을 내고 늦게 가면 그만큼 더 늦게 서야 업적을 거두고 있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구라파나 미국의 교육내용은 해마다 그 방법과 내용이 새로워지고 따라서 그 효과를 크게 올리고 있는 것이다. 교육시설을 나라마다 대규모로 확장·강화하여 고등학교 교과과정도 엄청나게 높아지고 있고, 또 적어도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대학원 졸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박사라고 해야 전문가요, 기술자로서 제대로 출발을 할 수 있는 형편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로부터 대학과정에 이르기까지 일반 교양과 전문 학과의 수련을 빈틈없이 받게 마련인 것이다. 사실 구미의 오늘의 교육 사업은 유치원 또는 유치원 이전의 지도로부터 학사, 석사, 박사 또는 각 분야의 연구사업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운명을 걸고 경쟁 아닌 전쟁 같은 노력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형편을 생각할 때 아무리 뒤 떨어져있고 또 가난하다고 하더라도 그 어느 학교나 학교인 이상, 또 학생이요 교사인 이상, 어떻게 하면 교육의 세계적 수준에 따라 갈 것이냐를 생각지 못한다면 이는 교육에 대한 모독이요 국가에 대한 배신이 되지 않을까 한다.
문제를 더 파고든다면 국가의 교육정책이 어떤 것이냐, 나라의 정치가 교육사업에 어떤 경륜을 가졌고 또 어느 정도로 성실 하느냐 하는 것이 논의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사업의 책임은 정치에 돌리기 전에 학원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책임을 위하는 성의와 노력이 없어서 아니 될 것이다. 즉 학교라고 하면 그 어느 학교이고 경영의 책임자, 교육의 책임자가 성의와 노력을 다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원당국자와 교사들이 교육의 목적과 내용에 대한 큰 각오를 가지고 오늘 이 나라의 청소년들로 하여금 앞날의 떳떳한 책임자가 될 수 있을 만큼 어떤 신념과 기풍을 길러주는 길을 터놓게 되어야 할 것 아닌가한다.
그런 점에서 생각할 때 대학은 그 나라의 교육과 학문과 청소년기풍의 지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학의 자유는 연구의 자유와 아울러 국가의 각급 교육의 표준을 세우는 전문적 독립기관이 되는 것이고 그리고 학생들의 다방면의 전문적 지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하는 자치정신과 그 활동의 역량을 기르는데 그 뜻이 있는 것이다.『남아 십오세면 대장부』란 옛말도 있거니와 적어도 대학 졸업생들이면 4년의 전문과정의 공부와 그 동안의 자치의 책임정신함양이 중·고등학생들을 비롯한 모든 청소년들의 언니다운 믿음직한 기풍의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할 것이다. 오늘 대학과 대학생들의 무게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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