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우연의 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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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유 하(1963~ ) '우연의 음악' 부분

꽃 피는 소리, 민들레의 음표들,
브라스 밴드 행렬로
나무를 타고 오르는 나팔꽃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의 종달새 울음

그리고, 내 수만의 몸들을 빠져나와
달려가는 영혼의 바람소리

그대가 받은 이 生도
아주 우연한 음악

우연히,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는 몸을 받고 세상에 태어난다. '몸'은 인연들의 '모음'이다. 한 마리 개미도 몸이고 한 방울 이슬도 몸이다. 조약돌도 몸이고, 덩어리로 보면 은하수도 수많은 별들로 이루어진 몸이다. 우리는 눈을 받고 태어났다. 눈은 보이는 세계, 드러난 우연의 총체를 본다. 우리는 귀를 받고 태어났다. 귀는 보이지 않는 세계, 우연성의 숨결 소리를 듣는다. 그리하여 근원을 알 수 없는 우주에서는 '우연의 음악'이 그치는 날이 없다.

최승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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