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화, 새로운 강자로 우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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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

26일 폐막된 제30회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의 한국특별전에 대한 현지 언론들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드래곤 볼''아키라'등 일본 만화 일색이던 프랑스에 첫선을 보인 우리 만화는 "독특한 캐릭터가 인상적"(리베라시옹), "새로운 형식에의 도전"(샤랑트 리브르), "한국 만화는 일본 만가와 달랐다"(수드 에스트)는 평가를 받았다.

나흘간의 행사기간에 한국관을 찾은 사람은 8만여명. 관객들이 밀려 수시로 입장이 제한될 정도였다. 1백여평의 전시장이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전시작을 사고 싶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번 전시의 성공은 큐레이터들의 치밀한 기획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덕이었다. 이들이 준비한 컨셉트는 현대적 감수성의 소개 및 일본 만화와의 차별성 부각. 김낙호 큐레이터는 "유럽인들의 동양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면서 일본의 만가와 다른 점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이 성공해 기쁘다"고 말했다.

특히 박희정.최호철.최인선.이애림.아이완.변병준.석정현씨 등 20~30대 젊은 작가들이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외국 언론들은 여성 작가들의 활발한 활동에 주목했다.

조직위원회 장 마르크 테브네 사무총장은 "프랑스 출판인과 작가, 만화관련 전문가들이 한국 만화의 풍부함에 매우 놀랐다"며 "이번에 미처 보여주지 못한 다른 작가의 작품도 알릴 기회를 마련해야겠다"고 말했다. 조직위 언론담당인 니콜라스 피네 역시 "지금까지는 일본 작품들이 인기였다. 이제는 한국 작품들 차례"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모바일.인터넷 만화전은 IT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자리였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휴대전화의 작은 화면 속 만화에 큰 호기심을 보였다. "한국이 이런 문화가 있는 나라인 줄 처음 알았다"는 것이 로렌 쇼스(15)의 얘기다. 박세형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아트와 테크놀로지의 결합이라는 세계적인 추세속에서 만화가 할 일이 적지 않다"고 전망했다.

조용하면서도 뜨거운 관심을 보여준 관람객들이야말로 앙굴렘을 만화 천국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오전 10시 시작되는 만화책 전시에 참석하기 위해 한 시간 전부터 꼬불꼬불 줄을 서고 20분 가까이 걸리는 작가의 사인(사실상 그림)을 받기 위해 군말없이 기다리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신문수 한국만화가협회장은 "사인회를 하기 전에는 우리 만화가들의 사인을 받기 위해 과연 줄을 설까 염려했는데 그것이 기우임을 곧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두호 세종대 교수는 "관람객들의 진지한 표정에서 유럽 만화강국의 참모습을 보았다"고 덧붙였다.

다른 나라의 행사 참여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 박인하 큐레이터는 "5월 열리는 벨기에 만화페스티벌과 내년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만화올림피아드에서 참가 제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한국 만화가 바야흐로 유럽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문화전쟁의 시대라는 21세기. 세계 각국은 자신의 문화를 어떻게 포장해 상품으로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장 피에르 메르시에 프랑스 국립만화이미지센터 학술부장은 "한국은 24시간 문을 연 만화방이 있는 나라"라며 "그만큼 만화를 즐기는 대중이 있다는 것이 한국 만화가 가진 힘이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세계를 상대로 벌일 문화전쟁에서 우리의 무기가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는 점이야말로 이번 행사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대부분의 자료가 프랑스어로만 제공된 점은 국제행사라는 수식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는 바꿔 말해 국내에서 국제행사가 열릴 경우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잘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다.

또 행사 참여가 문화관광부.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과 서울애니메이션센터로 나뉘어 진행된 가운데 양측 간의 사전 협조가 미비했다는 점도 옥에 티였다. 다행히 실무진의 협조로 빨리 수습되긴 했지만, 국제행사에 참여하는 정부기관의 업무조율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앙굴렘=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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