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분쟁…그 원인·근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념적·정치적 차이 때문에 l950년대 말에 시작되었던 중·소 분쟁은 금주 들어 두 거인당의 유대가 사실상 끊어지고 외교공관을 명목상의 규모로 축소시킴으로써 절정에 다다랐다.
최초의 말썽은 1950년대 말에 일어났다. 그 무렵 소련은 「인민공사」를 설치하여 공산화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경제적인 모험을 하려는 중공에 경고를 발했다.
그 대신 「흐루시초프」의「스탈린」격하정책에 놀란 북평은 「크렘린」의 그러한 조치를 이단이며 수정주의로 다가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북평은 「모스크바」∼「워싱턴」간의 이해가 중공을 고립시키고 소련 원조를 통한 중공의 공업화 재군비를 향한 움직임을 수년간, 아니 수십년간 지체시킬까 우려했었다.
1959년 6월 20일 소련은 57년의 북평과의 협정에서 물러서서 중공에 원자탄 「샘플」과 원자탄 제조기술료를 제공할 것을 거부하고 경제·군사 원조를 중단했다.
이것이 중·소 관계의 전환점이 되었다. 북평은 소련의 핵실험 금지 조약읕 비난했다.
의견 충돌은 드디어 국경 충돌로까지 발전했고 최근 소련은 중·소 국경에 수개 사단을 배치 방위력을 증강시켰다.
이들의 분열은 금주 홍위병들이 소련대사관을 공격했을 때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고 소련은 외교관 철수령을 내리게된 것이다.
오랫동안 조성되어 온 중·소 분열은 이리하여 현실화했다.【UPI】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