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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 때 합참 간부들 아무도 자리 안 지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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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10년 3월 26일 침몰한 천안함의 함수가 4월 23일 대형 크레인으로 인양되고 있다. [중앙포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피격 사태 당시 군 고위직에 있던 인사들은 한결같이 이같이 이야기한다. “북한이 그렇게 공격할 줄 어떻게 예상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 정황은 이해할 수 있다. 신(神)이 아닌 이상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상대방의 공격을 염두에 두고 대응전략을 세워두는 것은 이와는 다른 얘기다. 설사 기습을 당했더라도 그 대응방식에서 나라와 군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피격 당시 우리의 대응자세를 보면 곱씹어 볼 대목이 적잖다.

국방장관에게 “배에 물 샌다” 첫 보고

 김성만 전 해군 작전사령관의 분석. “천안함 사태 대응의 가장 큰 허점은 합동참모본부(합참)의 간부들이 대한민국 안보를 최일선에서 책임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망각한 것입니다. 주요 보직 간부들은 항상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삐삐’로 급한 연락을 주고받던 시절에는 15분 이내에 귀대해야 하기 때문에 저는 통신이 끊길까 봐 지하에는 내려간 적도 없어요. 의장이 자리를 비우면 차장이나 본부장이 남아서 챙겼습니다. 그런데 천안함 폭침이 일어나던 날 상황을 보세요. 의장이 세미나 때문에 대전에 내려갔으면 차장 이하 간부들 중 한 명이라도 합참을 지켰어야 했는데 아무도 그 자리에 없었어요.”

 군함이 침몰한 비상상황이 벌어졌는데도 보고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군 고위 당국자 A씨의 증언. “당시 김태영 장관에게 전달된 첫 상황보고는 ‘초계함 바닥에 파공이 생겨서 물이 새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김 장관이 ‘함정에는 격실이 많으니 빨리 안전한 곳으로 옮겨서 물을 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죠.” 이미 폭침으로 결론났는데 국방장관에게는 엉뚱한 보고가 전달된 것이다.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은 “천안함 폭침은 사태 발생 15분 만에 확인됐다”며 “그럼에도 그후에 합참이 엉성하게 대응한 것은 당시 합참 전체의 실력이 그 정도였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후에도 합참의 대응자세는 개선되지 않았다.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국가안보총괄회의를 개최하는 등 대책을 강구했으나 그때뿐이었다. 천안함 폭침 이후 8개월 만에 벌어진 연평도 피격 사건은 어쩌면 예고된 참사였는지 모른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조선일보와의 퇴임 인터뷰에서 2010년 11월 연평도 피격사건에 대해 그동안 감춰 있던 숨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당시 여론의 지탄을 받았던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라’는 이 대통령의 첫 발언이 나온 과정이 소개됐다. MB는 “국가위기관리센터 긴급회의에 배석했던 한 인사가 청와대 대변인한테 개인적인 의견을 전한 것”이라고 밝혔다.

“연평도 피격 대응 이상하다 생각”

그러나 당시 대변인이었던 김희정(새누리당) 의원은 이와 다른 증언을 한다. “춘추관에서 다른 브리핑을 하던 중 연평도 사건이 알려져 긴급회의에 좀 늦게 참석했습니다. 기자들이 ‘대통령님의 첫 말씀을 원한다’고 말했죠. 그리고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라’는 것이 대통령의 일성이라는 점을 여러 참석자로부터 확인하고 기자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응방향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간인이 포탄공격을 받고 있고, 대통령도 전투기를 동원한 공격을 지시하는데 많은 군 관계자가 ‘곤란하다’는 식으로 답변하는 거예요. 개운치 않은 생각이 들어 일부 참모들에게는 ‘제 수첩에 대통령님의 일성을 직접 적어 주시죠’라고 요구했습니다. 사안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죠.” 다른 참석자 D씨도 “군인 출신과 군 지휘관들이 ‘확전되지 않아야 한다’는 쪽으로 발언을 해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결국 대통령의 일성은 ‘회의 참석자 한 사람이 대변인에게 전해준 것’이 아니라 김 대변인이 여러 참석자와의 협의를 거쳐 발표한 것이다.

  또 다른 참석자 K씨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그는 “사건이 끝난 후 생각해 보니 ‘확전 자제’라는 대통령 발언은 그 대상을 잘못 잡은 것이었습니다. 군에서 ‘확전 자제’는 ‘현장에선 용감하게 싸우되 전면전으로는 비화되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당연히 국민들에게는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우리 군이 대처를 잘하고 있습니다. 정부를 믿고 생업에 종사하십시오’라는 식으로 나가야 했었죠. 군에 해야 할 지시가 엉뚱하게 대(對)국민용으로 나간 겁니다.”

 MB는 천안함 폭침 직후 발표한 ‘5·24 북한 제재 담화’에서 “북한이 우리의 영해, 영공, 영토를 무력 침공한다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연평도 피격이라는 실제 상황이 벌어지자 우왕좌왕했고, 결국 돌직구를 날리지 못했다. MB는 퇴임 인터뷰에서 “공군은 뒀다 뭘 하느냐”며 공습을 지시했으나 군 고위 관계자가 “교전규칙에 따르면 공군이 나서면 절대 안 된다. 미국과도 상의해야 한다”며 막았다고 밝혔다.

MB “군이 공군 출동 반대” … 발언 논란

그러나 MB의 이 언급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전 공군참모총장은 “군 통수권자가 반드시 공군을 동원해야겠다고 판단이 들면 명령을 내렸어야 했었고, 군 고위 관계자들의 조언을 들어 전투기 공격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면 그것으로 그쳐야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런 말을 하면 책임회피가 아니냐”고 말했다.

 이같이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태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적잖다. 민간인까지 포격당하는 상황에서 엉뚱한 내용을 언론에 전하는 수석비서관회의, 대통령은 전투기를 동원하라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군 수뇌,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 될 장면들이다.

 오랫동안 북한과 군사협상을 담당했던 김국헌 예비역 육군 소장의 고언은 이와 관련해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언젠가 박정희 대통령이 월남에 1개 사단을 보내는데 얼마나 걸리느냐고 군 수뇌부에게 물었다. 육군 참모총장은 ‘6개월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답변했죠. 그러나 당시 공정식 해병대 사령관은 ‘대대 전투단은 24시간 내, 연대 전투단은 48시간 내 출동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군인은, 장군은 이런 기개를 갖고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하고, 군 통수권자는 이런 장군들을 주요 자리에 앉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안희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정영교 연구원

◆ 46+1명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22분 백령도 서남방에서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해 사망한 천안함 승조원과 30일 그들을 구조하려다 순직한 UDT의 전설 한주호 준위. 당시 사망한 장병은 한 준위 외에 이창기 준위, 최한권·김태석·남기훈·문규석 원사, 김경수·안경환·김종헌·최정환·민평기·정종율·박경수·강준·박석원·신선준 상사, 임재엽·손수민·심영빈·조정규·방일민·조진영·문영욱·박보람·차균석·이상준·장진선·서승원·서대호·박성균·김동진 중사, 이용상·이상민(88년생)·이재민·이상희·이상민(89년생)·강현구 하사, 정범구·김선명·안동엽·박정훈·김선호 병장, 강태민·나현민·조지훈 상병, 정태준·장철희 일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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