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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산하(2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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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해의 황금어장에 둘러싸인 제주도는 어딘지 풍물이 다른 이역의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 한군데뿐인 밀감의 산지요, 난대와 한대를 겸전한 동식물의 보고이다. 뭍에서 I백6「킬로」 출렁이는 파도와 더불어 표류돼 있는 이 아득한 섬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정착했는지 알 길이 없다. 주위 4백리 어디를 둘러봐도 망망대해요, 중앙에 치솟은 한라산은 연중 절반이 눈 덮인 해발1천9백50「미터」. 이르기는 제주의 3다를 꼽지만 여자와 돌과 바람-이 세 가지를 제하고는 풍족한 게 없다. 긴 역사 동안 곤궁함을 면할 길이 없었고 외면된 유배지로 격리돼 있었다. 이조 영조 때 장한철은 뛰어난 문제였다. 워낙 가난하여 서울 갈 노자조차 마련할 길이 없는 처지인데 마침 관가의 호의로 진상 배에 끼어 행운의 과것길을 떠났다. 그러나 난데없는 풍랑이 휘몰아 표류, 전전하던 끝에 유구에서 돌아와 내리니, 역시 제주도였다. 이러한 얘기는 섬내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체념 담이다.
해안을 돌며 안간힘을 쓰다가 섬사람은 꿈을 스스로 억제하는데 익숙해진 것이리라. 서귀포 앞 바다 「섭섬」의 커다란 두 구멍은 「할망」 신이 섬을 가로 베고 누워, 다리가 바다에 잠겨 물장난 치다 생긴 것이라고. 민담에도 익살만 베어있다. 밖으로 못 키우는 꿈을 안으로 가꿔 꽃피웠다고 해도 좋다. 제주도가 온통 길고 짧은 신화와 전설의 나무로 어우러져 있음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이곳 고인돌을 발굴한 결과 1천5 내지 2천년 전에 영산강 유역에서 옮겨가지 않았나 고고학자들은 어림짐작한다. 고·부·양 3성의 시조 신화는 부족사회로 형성된 세 집단의 수호신을 상징하는 것일 게라고 민속학자들은 의견을 모은다.

<황금에 비기는 「귤값」 - 한 그루에 명의 학자>
섬사람들의 그런 꿈과 신화의 본고장이 서귀포. 한라산의 풍신과 안개의 신이 좌정한 「서귀리 본향 본풀이」는 섬내 1백7O여 신당의 총본산. 이 원시종교 속에서 조상의 체온을 느끼며 오직 섬을 지키고 산다. 그러나 이제 서귀포에는 새 신화가 무르익어 간다. 싱그러운 해풍을 마시며 새 신화의 고장이 되고자 발돋움한다.
서귀포는 온화한 남국의 기후와 경치를 갖춘 제주도의 최남단. 서울이 섭씨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 떨 때 제주의 수은주는 영도 남짓에서 자라목이 된다. 기껏 추워봤자 첫새벽 한때 영하5·7도 였다던가.
그래서 이 삼동의 막바지에도 밀감을 수확하는 것이다. 도내 연간 생산량 5백여「톤」중 8할이 서귀포 일원의 산품. 또 「파이내플」「케나프」같은 열대 식물의 시험 재배까지 한창이다.
밀감은 일찍이 고려에서 이조를 통하여 탐라의 진귀한 진상품이었다. 5,.6월이면 꽃을 말려 다제(다제)로 보내고 10월부터 이듬해 5월에 걸쳐 금귤· 동정귤·청귤·산귤·왜귤· 항감·유감 등을 잇대고 그 껍질은 말려 생약제(진피·청피)의 공물이 되었다. 요즘에 치는 은주 밀감은 50년대의 수입종.
사철 상록인 이 지대는 특히 산밑을 파고들며 퍼지는 귤 밭으로 한층 짙고 선선하다. 황금에 비기는 귤값인터에 한 그루면. 한 학생의 학자금이 열린다는 기대 때문에 도민의 열은 마냥 푸르러있다.
그러나 귤 밭은 해발2백「미터」이내의 중산간 지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밭을 건너 산담 (선인의 묘)을 돌면 해발6백「미터」까지는 밋밋한 초원지대.
소와 말을 방목하기만은 아까워 이 유휴지를 개간하겠다고 골똘해 있다. 물이 부족한 제주도는 또한 화산 희석의 농토뿐이어서 거의 밭에만 의존하는데, 초원에 급수시설을 한다면 수백 평방「킬로」의 농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여기엔 곡식도 실으려니와 공업원료가 되는 특용작물을 가꾼다면, 자연 대규모의 공장이 따르게 마련이고 나아가 섬사람들의 의욕은 산정을 향해 새 신화를 심어간다.

<의욕은 산정을 향하여 - 특용작물 재배로>
해발 l천「미터」까지엔 표고를 재배하고 고산대에서도 산업·관광의 자원을 개발키 위해 학술조사를 베푼다. 쿠상나무·종비나무 등 한대지방의 고산식물은 제주도가 가진 자랑이요, 지질학 상으로도 특수하게 지목되는 명산. 하지만 산정에 이고 있는 용천을 옛 신비 그대로 담아둬서만 될까. 이 무진장한 수원의 이용이 오늘 새 신화를 엮으려는 제주도에서는 진한 몫인 것이다.
글·이종석 기자 사진·신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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