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세상탐사] ‘김학의 파동’에 관한 다섯 가지 의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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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호 35면

뉴스에도 ‘19금(禁) 등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어린 자녀가 볼까 두려운 기사들이 넘쳐나고 있다. 성접대 동영상, 집단 파티, 쇠사슬과 채찍…. 중년 남성이 가요를 부르며 여성과 묘한 행각을 벌이는 장면이 문제의 동영상에 담겨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영화 ‘매트릭스’의 카피 한 구절이 떠오른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 온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지난 21일 사표를 냈다. 그는 ‘사퇴의 변’에서 “자연인으로 돌아가 반드시 진실을 밝혀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젠 그가 접대를 받았는지 사실만 밝히면 되는 걸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혹이 그렇게 막을 내린다면 한국 사회가 한낱 동영상에 한바탕 춤을 춘 꼴이 된다. 우리의 ‘알 권리’는 동영상 등장인물뿐 아니라 이런 의혹에 엄청난 국력이 소모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행사돼야 한다. 그러려면 김 전 차관 사퇴까지 전개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우선 알고 싶은 건 김 전 차관이 왜 차관직을 받아들였느냐다.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됐던 그는 지난 2월 초 총장후보추천위의 낙점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3일 박근혜 정부의 차관으로 내정됐다. 그것도 경기고 1년 후배(황교안)가 장관으로 임명된 법무부의 차관이었다. 검찰에 몸담던 그가 자신을 향한 의혹과 경찰 내사를 감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공직 제의를 사양했어야 마땅하다. “진실이 밝혀지면 그때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게 정상이다. 그가 욕심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뭔가.

 이 의문은 자연스럽게 두 번째 물음으로 이어진다. 김 전 차관이 위험한 오판을 했던 배경에 무엇이 있을까. 한 법조계 인사는 “의혹이 불거졌는데도 김 전 차관이 결국 임명된 건 그를 밀어 준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차관 내정 직후 검찰 안팎에선 “차기 총장이나 장관이 될 실세 차관”이란 입소문이 퍼졌다. 만약 그 힘의 실체가 권력층 내부에 있다면 그가 ‘법무부 차관 김학의’를 통해 갖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세 번째는 경찰의 청와대 보고에 관한 부분이다. 차관 내정을 앞두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경찰에 의혹 확인을 요청했으나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탓에 결과적으로 김기용 전 경찰청장이 경질됐다고 알려져 있다. 내정 전후의 보고 내용이 달랐다는 거다. 그런데 따져 보면 김 전 청장이 일부러 허위 보고를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수사라인 내부에 이견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이 의문은 네 번째 물음으로 넘어간다. 바로 민정수석실이 제 기능을 못한 이유다. 경찰 쪽에선 허위 보고 의혹을 일축한다. 경찰이 민정수석실에 조사 상황을 보고했으나 민정수석실 쪽은 “동영상이 있느냐”고 물었다는 얘기다. 민정수석실이 동영상의 존재 여부에 집착했다는 뜻이 된다. 이런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 청와대의 인사검증 기능은 심각한 맹점을 노출하고 있다. “본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식의 반응은 대체 무엇을 위한 조직인지 되묻게 한다.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하는 전직 검사들이 친정(검찰)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일까. 아니면 모종의 다른 힘이 작용했기 때문일까. 우리는 여기서 다시 앞의 세 가지 물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성접대 의혹 규명의 책임은 경찰로 넘어왔다. 중소 건설업자 접대에 놀아난 인사들의 얼굴을 밝혀내고 그들의 범죄 혐의를 입증해야 한다. 인사검증 단계에서 끝날 수 있었던 문제가 대형 스캔들로 번진 과정을 보더라도 이번 의혹에 선을 그을 구심점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경찰이 혐의를 밝혀내지 못한다면 “이례적인 공개 내사로 인격살인을 했다”는 비난마저 예상된다.

 그러나 의혹 규명 못지않게 중요한 건 김 전 차관 파문을 뒤덮은 안개를 걷어내는 일이다. 그 의문들이 풀리면 박근혜 정부의 민낯도 드러난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작업이지만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고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의문은 이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 민낯을 직시할 용기가 있을까. 그림자들만 어지럽게 흔들리는 무대에서 장막을 걷어낼 수 있을까. 어쩌면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자임해 온 그의 임무는 남성들의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구체제)을 혁파하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핵심은 그것이 자신에게 더 엄격해야 가능한 일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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