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착취당하는 청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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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슬기
한국외대 행정학과 4학년

대학생들에게 경험을 준다면서 모집하는 수많은 일자리 공고를 보고 있으면 『톰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가 생각난다. 톰과 허클베리 두 소년은 벌로 페인트칠을 하라는 숙제를 받는다. 일이 하기 싫은 두 소년은 꾀를 부린다. 지나가는 아이가 뭘 하느냐고 묻자 “이건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놀이가 아니야. 너도 한 번 시켜줄까?”라고 대답한다. 결국 이 꾀에 속은 아이들은 두 소년에게 선물까지 줘 가며 기쁜 마음으로 페인트칠을 대신 완성한다. 페인트칠이라는 노동이 놀이라는 포장지를 뒤집어쓰자 매력적인 상품으로 둔갑한 것이다. 물론 톰과 허클베리의 행동은 아이들의 영리한 꾀라고 웃어넘길 수 있다. 하지만 모집 공고에서 보이는 꾀는 더 많이 가진 기성세대가 덜 가진 20대에게 부리는 꾀라는 점에서 부당하다.

 최근에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팀이 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공고를 올렸다 뭇매를 맞은 일이 있었다. 3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주말을 포함해 주 6일을 일하는 조건인데 급여가 황당하다. 소정의 교통비와 활동 증명서만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공고를 본 네티즌들은 노동자의 비극과 혁명을 담은 레미제라블을 무대에 올리면서 잡역을 시킬 노예를 채용하느냐고 비판했다. 정상적인 노동 시장이었다면 이런 자리에 지원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경험이 필요한 많은 젊은이는 무임금 조건에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지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논란조차 되지 않는 일자리까지 합치면 얼마나 많은 20대가 무임금으로 자원봉사 아닌 자원봉사를 하고 있을지 가늠해보기도 어렵다.

 비단 공연예술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업이 운영하는 각종 인턴 제도는 인건비 절감 수단이며, 각종 서포터 제도 또한 공짜로 기업을 홍보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다. 취업하기 전에 인턴 한 번 해보지 않은 대학생이 없을 정도로 인턴 제도는 점점 더 퍼져나가고 있다.

 자원봉사든 인턴이든 억울하면 하지 말라고 할 일은 아니다. 지금의 20대는 경험과 스펙을 요구하는 사회로 나가기 위해 값싼 노동력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경험을 요구하는 주체가 노동을 경험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뮤지컬 ‘레미제라블’팀도 문제가 되자 사과문을 통해 ‘더 많은 젊은이들에게 공연 분야의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해명했다. 돈에 연연하지 않는 20대의 열정은 아름답지만, 그들의 열정을 헐값에 사서 소비하려는 때 묻은 마음은 아름답지 않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나는 참 싫다. 20대의 젊은 체력과 열정을 헐값에 소비하면서 ‘청춘은 그런 거야’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의 사회가 20대를 이용하는 방법에는 청년층에 대한 배려가 없어 씁쓸하다.

이 슬 기 한국외대 행정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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