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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이면서 오래 입는 옷 패스트 패션도 고민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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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앤-소피 요한손

지난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 패션위크’에서 주목받은 뉴스가 있었다. 스웨덴 SPA(Special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인 H&M이 세계적 패션 브랜드들처럼 패션쇼를 진행한 것. 카를 라거펠트, 소니아 리키엘, 마르니 등 매년 세계 유명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을 하며 화제를 모아 온 H&M의 또 다른 변신이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패스트 패션’, 예쁘지만 싸구려 옷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자구책일까. H&M의 스웨덴 본사를 찾아 수석 디자이너 앤-소피 요한손을 만나 그로부터 패스트 패션의 변신에 대해 물었다.

스톡홀름=이도은 기자 사진 H&M

H&M의 ‘파리 패션위크’ 진출을 두고 패션계에선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지만 정작 요한손의 답은 단순했다. “H&M은 항상 고객에게 깜짝 놀랄 이벤트를 만들어 주려고 해요. 새로운 시즌에 새로운 컬렉션을 보여주는 건 너무 뻔하지 않나요. 이번에는 형식과 장소를 바꿔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싶었죠.”

사실 H&M의 패션위크 진출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05년 ‘뉴욕 패션위크’에서 첫 선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엔 파리를 택했다. 장소가 바뀐 것에 대해선 “‘패션의 수도’는 역시 파리 아닌가”라는 간단한 답을 내놨다.

패션쇼 의상은 모두 25벌이었다. ‘전통적인 격식을 거부하는 사람들’, 즉 ‘보헤미안(bohemian)’을 컨셉트로 삼고 흰색 털 재킷, 검은색 모직 플레어 치마, 자수를 놓은 튜닉(tunic, 칼라 없이 둥글린 형태의 목선에 대개 엉덩이를 덮는 길이의 의류로 원피스와 비슷) 등이 등장했다. 이번 패션쇼에서 선보인 옷들은 H&M 매장에서도 그대로 판매될 예정이다. 가격 역시 가죽이나 모피 등 일부 고가 소재 제품을 제외하곤 H&M 수준에 맞춰 책정된다.

패션위크 진출이 아니더라도 H&M의 ‘깜짝 이벤트’는 이미 수차례 있었다. 지난 오스카 시상식에선 배우 헬렌 헌트에게 드레스를 입히며 레드 카펫에도 등장했다. H&M의 가장 큰 이벤트는 마르니나 메종 마르틴 마르지엘라 등과 함께 한 디자이너 협업이다. 협업 제품이 나오기 전날부터 매장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은 이제 연례행사가 된 지 오래다.

그는 협업 디자이너 선정 기준이 꽤 까다롭게 진행된다고 했다. “디자인·마케팅·홍보팀에서 각각 희망 리스트를 만들어요. 세 분야에서 가장 공통적으로 만족할 사람을 결정하고 연락을 취하죠. 물론 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 시즌의 트렌드와 맞는지도 고려해야 해요. ” 이미 올해 협업 상대는 ‘톰 포드’라는 소문이 돈다고 하자 손사래를 치며 “그는 언제나 물망에 오르는 인물”이라며 말을 아꼈다.

컬렉션 참가와 디자이너 협업에도 불구하고 H&M은 ‘패스트 패션’의 대명사다. 최근 ‘칩앤시크(싸고 유행을 좇는 옷)’가 하나의 쇼핑 전략이 된 것도 이런 패스트 패션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의견에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쉽게 사고 버리는 건 고객의 선택일 뿐이죠. 우리는 트렌드를 발 빠르게 좇는 노하우에 합리적인 가격대가 될 수 있는 방식으로 옷을 만들고 있는 거고요. 하지만 사회적 시선을 무시하진 못해요. 패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좀 더 많이 생각하죠.” 그래서 그는 “감각적이면서도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컨셔스(conscious) 라인’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었고, 유기농 면이나 재생 소재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한손이 이끄는 H&M의 디자인팀은 모두 150여 명. 실시간으로 트렌드를 반영하는 브랜드의 특성상 정확한 예측은 필수다. 노하우를 물었더니 “여행을 많이 하고, 유행의 움직임에 늘 촉수를 뻗고 있다”고 했다. 패션위크 외 원단 박람회, 트렌드 세미나, 엑스포 등도 꼭 둘러본다.

그렇다면 올 봄여름 유행의 큰 흐름은 무엇일까. 그는 “블랙 앤드 화이트에 그래픽 요소가 결합된 디자인”이라고 답했다. “ 블랙 앤드 화이트는 항상 존재했지만 지금은 다시 패션의 중심에 섰죠. 줄무늬·점 무늬 등 그래픽 프린트가 결합된 다양한 형태로 말이죠.”

트렌드를 알려주는 그의 목소리에 빠른 리듬감이 느껴졌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패션의 숙명을 즐기는 것일까. 그가 화답하듯 말했다. “패션은 항상 앞으로 흐르고 있죠. 파도를 타는 윈드서핑처럼 그 흐름을 타면 될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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