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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똥차가 안 가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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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권석천
논설위원

점쟁이는 아니지만 조짐 비슷한 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유의 조짐은 사소해 보이는 데서 시작된다. 이를테면 지난달 광주고법 제주형사부 법정에서 피고인이 재판부를 향해 외쳤다. “강간 안 했다. 이 개XX야.” 제주 올레길 여성 관광객 살인범 강씨였다.

 지난 1월 서울고법에서는 살인 피고인 박씨가 징역 13년을 선고한 판사들에게 질문이 있다고 손을 들었다. “13년이 장난입니까?” 정치인 판결 때마다 줄줄이 뜨는 비난 댓글이 문제가 아니다. 이쯤 되면 법정의 권위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이때의 권위는 권위주의와는 다르다. 한 제도가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믿음, 존중감 같은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지난주 한 일간지 1면에 실린 양승태 대법원장 기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기사는 양 대법원장이 지난해 6월 공관에서 문재인 의원 등 경남중·고 동문인 여야 의원 7명과 만찬을 했다는 내용과 함께 법조인들의 다양한 반응을 전했다. “대법원장이 공관에서 학연(學緣) 모임을 챙긴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그 의원들이 나중에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다면 원장이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느냐.” “대권 후보에게 줄 대기를 한 것이라는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날의 만찬은 어떤 성격이었을까. 기사에 등장한 의원들 가운데 유기준 새누리당 의원에게 물어봤다. 전화기에선 헛헛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총선 후 당선 축하 차원에서 학교 선후배가 함께 밥 먹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선은 전혀 화제에 오르지 않았다. 여당 의원이 더 많았다.” 그래도 대법원장이 동문 의원들을 공관에 부른 것은 불찰 아닐까. 그것도 유력 대선 주자까지. 일선 법원 판사·변호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대법원장이 대통령 후보에게 줄을 댄다고요? 무엇을 위해서죠? 상상력이 좀 지나친 것 같은데요.”(고법 부장판사)

 “대법원장이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문제 아닌가요? 판사들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받고 있는데….”(지법 부장판사)

 “고교 동문을 챙기는 듯한 인상을 줬다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줄 대기’는 뜬금없는 얘기고요.”(판사 출신 변호사)

 자, 정리를 해 보자. 대법원장이 학연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인 건 문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대선 후보에게 줄 대기를 하려 했다거나 선거법 위반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3권 분립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법원장은 헌법상 6년 임기가 보장돼 있다. 만약 정권이 바뀌어 대법원장을 밀어낸다면 전국의 판사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후배 의원들의 선거법 재판? 법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대법원장이 일선 재판에 개입할 수 있을까. ‘대법원장님 후배 사건’이라고 봐줄 수 있다는 발상은 법과 양심을 지키려 노력하는 대다수 판사에 대한 모욕이다.

 법정의 권위가 흔들리는 데는 판사들의 책임이 작지 않다. 그렇다고 판결과 법정의 권위, 나아가 사법제도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법질서는 무너져 내리게 된다. 법정에 법복 입은 판사들이 들어올 때 방청객이 기립하는 이유는 판사 개인이 아니라 판사직(職)에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서다. 대법원장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제도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선 정당한 비판인지, 아니면 과도한 비난인지 정확히 가려야 한다. 대법관을 지낸 한 법조인은 “제도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들”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들은 우스갯소리다. 버스가 정류장에서 출발하지 않자 한 승객이 고함을 질렀다. “이 똥차 왜 안 가?” 기사의 대답이 돌아왔다. “똥이 차야 가죠.”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는 제도를 비하하면 당신과 나, 모두가 똥이 된다.

권 석 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