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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쑥쑥] 세밀화 곤충도감 자연의 숨결이 훅~

중앙일보

입력

집쥐 21일, 코끼리 2년, 돼지 9주, 인간은 9개월….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 머무는 시간이다. 책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다. 기획하고, 취재하고, 원고 쓰고, 그림 그리고….

책 만드는 사람이 책을 품고 있는 시간은 책마다 다르다.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은 6년이 걸렸다.

화가가 곤충 한 점을 그리는 데 평균 15일이 걸렸다고 한다. 잠자리 날개 맥까지 섬세하게 표현하고, 물방개 뒷다리의 털까지 실감나게 그리자니 그러했음직하다.

그림에는 이름과 함께 언제 어디에서 보고 그렸는지가 적혀있다.

그린 정성은 둘째치고 발품깨나 팔았겠다 싶다. 우리나라에는 이름이 알려진 곤충만도 1만2천 종이 산다고 하니 그 가운데 1백37종을 고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책의 가치가 반드시 품고 있던 시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발 품을 판 덕에 『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은 자연에 대한 애정과 철학을 온전히 담고 있다.

보리 사람들은 '실천이란 이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서에서 나오는 것이며 정서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길러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은 이제까지 나온 도감들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 학명과 곤충 분류도 착실하게 들어있고, 2백31점의 세밀화에 붙인 설명도 자세하지만, 곤충에 대한 지식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연의 느낌과 정서를 전해주는 것이다.

『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은 쉽고 편안하게 쓴 글이 살갑다.

20명의 전문가가 내용을 쓴 뒤, 글을 다듬고 전문가의 감수를 받아 완성했다는 점에서 믿음이 가기도 하지만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린 글이 생생하다. 소리가 들리고 냄새가 나고 계절과 날씨가 느껴진다.

춥고 따뜻하고 서늘해지다가, "맴맴맴맴 매앰""찌이이이""쓰으름 쓰으름" 하고 우는 소리 끝에 곤충 몇 마리쯤 날아들 듯하고, 비가 오고 날이 개고 해가 쟁쟁 내리쪼이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장마비 갠 맑은 하늘에는 된장잠자리가 시원스레 날기도 한다.

책을 덮고 나면 사각사각, 톡톡, 오글오글, 산과 강과 들에서 소리가 나는 듯하다. 모두들 작은 생명들을 가득 품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을 품은 산과 강과 들을 함부로 파헤치고 다쳐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정서'에서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아이들과 함께 산과 강, 들판으로 나가 보자. 풀숲이나 나뭇잎 뒤, 가랑잎 밑에 작은 몸을 숨긴 곤충들을 가만가만 들여다보고 자연이 품고 있는 생명을 배우자.

이성실 <어린이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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