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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뇌도 일하고 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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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좌뇌와 우뇌가 기능이 서로 다르다는 건 누구나 아는 평범한 상식이다. 언어와 수리를 담당하는 좌뇌는 분석적인 사고를, 예술과 상상을 담당하는 우뇌는 직관적인 사고를 처리한다. ‘잠자는 우뇌를 깨워라!’ 같은 자기 계발 구호도 식상할 정도로 자주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50년 전, 아니 30년 전만 해도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150년 전 프랑스의 외과의사 폴 브로카와 독일의 신경학자 카를 베르니케가 좌뇌 측두엽에서 언어가 처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왼쪽 뇌라고 믿었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기능을 주로 좌뇌에서 담당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심장이 왼쪽에 있듯이 뇌도 좌뇌가 중요하다’는 테제가 상식이 돼버렸다.

 아이큐 검사도 대부분 좌뇌에 치중된 능력을 측정하는 도구이며, 학교에서 배우는 ‘절차적 학습과 기억’도 좌뇌를 잘 써야만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좌뇌를 잘 발달시키고 제대로 쓸 줄 알아야 학교에서 높은 성적을 얻을 수 있으며 좋은 직장에 취직이 된다. 특히나 교수, 의사나 법조인, 저널리스트 등 소위 전문가 집단은 좌뇌가 발달한, 그리고 그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다. 현대 사회는 ‘인간의 지적 능력은 곧 좌뇌의 능력’이라고 믿는 좌경 사회인 것이다.

 1950~6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카고대 로저 스페리 교수는 간질환자의 뇌를 좌우로 절개해 우뇌도 좌뇌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좌뇌와 우뇌를 모두 적절히 활용해야만 고등한 지적 활동을 완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8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된다. 불명확했던 우뇌의 기능을 사회적으로 제대로 인식하게 된 게 80년대 무렵, 불과 30년 전 얘기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20세기를 관통하며 살아온 우리는 꽃거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머릿속 지식을 활용해 궁금한 걸 해결해 주고, 상황을 분석해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며 밥벌이를 하는 많은 현대인은 피터 드러커가 말한 ‘지식노동자’들이다. 100년 전 사람들이 주로 몸을 써서 돈을 번 육체노동자들이었다면, 현대인들은 소프트웨어를 지게처럼 짊어지고 좌뇌를 혹사시키며 살아가는 지식노동자들인 것이다. 500원보다 조금 더 많이 받을 뿐.

 산업혁명 이후 육체노동이 기계로 대체되었던 것처럼 지식노동 역시 조만간 컴퓨터로 대체될 것이다. 땅을 파는 노하우는 절대 굴착기로 대체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대체되었고, 활자조판을 짜는 노하우는 절대 컴퓨터로 대체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금세 대체되었다. 지식노동자들의 운명 또한 길지 않아 보인다. 러시아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가 IBM 수퍼컴퓨터 딥 블루에 쓰디쓴 패배를 맛본 사건은 ‘인간의 좌뇌 기능은 머지않아 컴퓨터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음’을 직감하게 해준 우울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어떤 시대가 될 것인가? 자명하게도 신경과학자 대니얼 핑크의 말처럼, 컴퓨터로 그 기능을 대체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오른쪽 뇌’의 시대가 될 것이다. 분석만으론 얻을 수 없는 직관이 발달한 사람,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스타일이 있는 사람, 스토리 안에 감동과 유머를 섞을 줄 아는 사람이 더욱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제품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기능을 좋은 품질로 싼 가격에 제공하는 건 기본. 이런 좌뇌식 사고를 넘어 소비자들은 이제 경험, 디자인, 스타일, 스토리 등 감성적이고 무형적 가치를 중시하는 이른바 ‘하이컨셉트의 시대’를 요구하고 있다. 사람들이 아이폰을 사랑하고, 핀터레스트와 인스타그램에 열광하고, 소니보다 아테하카에 더 애정을 갖는 것이 그 증거다. 따라서 좌뇌와 우뇌를 고루 활용한 전뇌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인재가 우리 사회에 절실하다.

 오늘 아침, 이 신문을 펼쳐 든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전적으로 좌뇌에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계산하며, 절차적 과정에 숙달된 걸 직장생활의 노하우라 믿으며 살고 있다면, 당신은 좌뇌 노동자다. 아직은 고상하지만 결국 전뇌적 사고를 하는 신입들에게 밀릴, ‘바뀐 세상 물정도 모르는 예비 퇴물’이란 얘기다. 슬프게도.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우뇌를 잘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성공하기 위해서거나 살아남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양쪽 뇌를 다 잘 사용하는 삶이 훨씬 더 짜릿하고, 유쾌하고, 멋지기 때문이다. 나무를 섬세하게 보되 그렇다고 숲을 보는 데 소홀하지 않는 삶, 논리와 분석에 능하되 직관과 상상을 더해 균형 잡힌 사고를 할 때 삶 자체가 창조적으로 바뀐다. 흥분되게도.

정 재 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