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돈·인력 지방분산 유도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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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기가 회복 국면을 보이고 있다는 낙관론이 확산하고 있으나 지방에서의 체감경기는 아직 싸늘하다. 부동산 가격이 최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지만 이는 수도권 지역의 잔치에 불과하고 지방 부동산 경기는 여전히 침체 국면이다.

1970년대 후반 지역간 불균형 완화라는 과제가 대두된 이후 지방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각종 시책이 꾸준히 추진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경제의 위축 현상은 지속됐고 현 정부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보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확보라는 대명제에 밀려 지역간 균형발전이라는 숙원은 뒷전으로 밀리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간의 경제력 격차가 심화하고 있다.

국토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97년 외환위기 이전에 전체의 51.3%를 차지했던 수도권의 총량 경제력은 2000년엔 52.6%로 상승했다. 권역별로 보면 수도권과 충청권의 총량 경제력은 늘고 있는 반면 여타 지역의 총량 경제력은 줄어드는 추세다.

즉 과거 동.서간의 차별화에 더하여 남.북간의 경제력 격차가 나타나고 있으며, 수도권 경제가 충청권으로 점차 광역화하면서 수도권에서 먼 지방일수록 그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경제격차 심화는 외환위기 이후 지방의 경제회복 속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 데서 비롯됐다. 즉 과거 지방경제를 이끌던 토착기업들이 외환위기로 타격을 받아 무너지면서 이들 기업의 주력 업종이었던 중소제조업과 유통업, 그리고 건설업의 기반이 크게 약화됐다.

특히 광주와 같은 지방도시의 경우 지역 중심지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쇠퇴하고 지방상권이 붕괴되면서 재래시장의 약 30%는 휴.폐업 상태다. 토착 백화점들은 대부분 간판을 내렸고 그 자리엔 대형 백화점.할인점이 경쟁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지방 대도시들은 지역특화 산업을 나름대로 지정하고 육성 계획을 수립,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자금과 전문인력의 절대적 부족으로 결국 외부 기업 또는 외국인 투자에 의존하는 형국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적인 취약점을 극복하고 지방경제의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수도권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는 자금.인력.정보가 지방에 분산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이 시점에서 낙후된 지역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추진 중인 '지역균형발전 특별법안'의 제정 자체가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와 국회의원들의 반대 등으로 불투명한 실정이다. 지방의 필요한 부문에 충분한 자금이 돌아가도록 지역 금융 활성화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기업가들이 지방에서도 필요한 기술과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데도 최근 정부 관계 부처에서는 외국인투자 유치와 첨단산업 육성 등을 명분으로 공업배치법 재개정을 추진하는 등 수도권 과밀화를 막기 위해 마련했던 수도권 정책의 근간을 뒤흔들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지역 균형발전 정책의 핵심은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여러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완화하자는 것이지 수도권의 경제활동 억제와 희생을 통해 지방경제를 발전시키자는 게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수도권 소재 일부 기업의 경쟁력에 손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지역간 균형발전을 통해 국내 기업 모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윈-윈(win-win)전략'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인식 <한국은행 광주 ·전남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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