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거리·술·담배 팔지 말라” 대형마트 옥죄는 서울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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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시가 대형마트 규제를 한층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계란·콩나물 등 51개 품목은 아예 대형마트에서 팔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선거공약으로 대기업 유통업체의 영업시간과 품목을 제한하도록 한 데 따른 조치다. 소매점을 하는 이원길(55·성동구)씨는 “중소상인만 팔 수 있는 상품이 정해져야 먹고살 수 있다”며 반겼다. 그러나 대형마트 업계는 “소비자 권익과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즉각 반발했다.

 서울시는 8일 대형마트와 기업형 수퍼마켓(SSM)이 판매할 수 없는 제한 품목 51개를 발표했다. 지난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이후 의무휴업을 하도록 한 데 이어 품목 제한까지 추진하는 것이다. 불만은 업체뿐 아니라 소비자에게서도 터져나온다. “소상인이 어려움을 겪는 건 알지만 상품별로 구매 가능한 매장을 다 외워서 여러 번 나눠 장을 보란 말이냐”는 것이다.

 서울시가 뽑은 51개 품목은 지난해 11월 한국중소기업학회 용역 결과에 따른 것이다. 담배·소주·맥주·막걸리 등 기호식품 4종을 포함해 콩나물·양파 등 야채 17종, 두부·계란 등 신선조리식품 9종, 갈치·고등어 등 수산물 7종, 사골·도가니 등 정육 5종, 쓰레기 종량제 봉투 등이다.

 임채운(서강대 교수) 한국중소기업학회장은 “소비자 설문조사 등을 통해 대형마트와 골목상인이 상생할 수 있는 51개를 추렸다”며 “소상인은 라면·생수에다 과일·정육까지 제한하자고 요구했지만 나름 균형점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규제 품목을 조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서울시는 다음달 공청회를 거쳐 국회에 법 개정 건의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시 조례에는 시장이 대형마트·SSM의 특정 품목 판매 제한을 권고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다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상위법 개정을 통해 품목을 제한할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거다.

 이에 대해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대형마트 3사와 SSM 운영회사는 “장바구니 필수품목이 총망라돼 있어 의무휴업이나 영업시간 제한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폭탄 규제”라고 반발했다.

업체 측은 “특정 품목 판매를 제한하면 그간 마트에 납품하던 농·수·축산업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며 “정부의 유통구조 혁신을 통한 물가안정 정책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형마트 업계 1위인 이마트는 이번 품목 제한으로 전체 매출의 15%가량이 줄어들 것으로 추산한다. 매출액으로는 한 해 2조2000억원 규모다. 특히 해당 상품이 각 분야 매출 1, 2위 상품이어서 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서울역 롯데마트에서 만난 주부 이혜영(52)씨는 “마트에 갔다 시장에도 가야 한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며 “재래시장보다 서비스가 좋아 마트를 찾는데 억지로 재래시장을 가란 말이냐”고 했다. 박모(49)씨도 “중소상인 생계가 걸린 문제라지만 품목 제한은 고객 불편이 너무 크다”며 “하청기업에 남품단가를 후려치는 관행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선거공약으로 대형마트 영업시간과 품목 제한의 법률화를 내걸었던 박 시장은 매달 일·공휴일 중 2일을 의무로 휴업하게 조치한 데 이어 지난해 8월 구청 추천을 받아 50개 상품의 대형마트 판매금지 추진을 발표했다. 당시 반대 여론이 거세자 학회 용역을 거쳐 재추진하는 셈이다. 지자체장이 영업품목을 제한할 수 있는 법안이 지난해 발의됐으나 자동 폐기된 상태다.

최지영·김성탁·강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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