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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퇴비 쓰고 죠리퐁으로 귀뚜라미 잡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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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왼쪽부터 죠리퐁으로 귀뚜라미 퇴치, 나투벌 키워 자연 수정, 한약재 찌꺼기로 퇴비, 거미가 유해 나방류 해결.

제주 소낭에서 겨울무를 키우는 김문준씨가 개발한 ‘귀뚜라미 퇴치제’는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주변 농가에까지 퍼졌다. 기존 친환경 벌레 퇴치제가 귀뚜라미한테는 듣지 않자 김씨는 여기에 온갖 재료를 섞어봤다. 뜻밖에도 수퍼마켓에서 산 과자(죠리퐁)를 잘 버무리자 효과가 발휘됐다. 김씨는 깨끗한 제주의 바닷물을 무에 뿌려 무기질을 공급하고 병충해와 잡초를 막는 ‘해수농법’도 활용한다.

 서울 강동구에서 40여 년째 유기농 채소를 키우고 있는 박흥석씨는 ‘대도시 농부’지만 자연 수정을 고집한다. 고온다습한 비닐하우스 안에서도 잘 견딜 수 있는 나투벌을 해마다 100마리씩 풀어놓고 입구에 그물망을 친다. 꿀과 꽃가루도 준다. 호박벌과 비슷하게 생긴 나투벌은 비닐하우스 농법이 발달한 네덜란드에서 개량한 것이다. 경기 남양주 영진농원의 김영진 대표는 채소에 ‘보약’을 먹인다. 경희대에서 직접 한약 찌꺼기를 실어와 1년 정도 숙성해 퇴비를 만든다. 이때 함께 섞는 유기농 볏짚은 연초부터 유기농 쌀로 인증받은 농가들을 찾아다니며 구한 것이다.

 전북 완주 ‘손바닥 딸기농장’의 김수남 대표도 한약재인 천궁·감초·당귀 등을 발효시킨 효소를 한 달에 두 번씩 준다. 딸기의 당도를 높이는 비법이다. 또 땅이 아니라 공중에서 물로 키우는 이른바 ‘공중 딸기’로 친환경 딸기를 생산한다. 흙에서 그냥 키울 때보다 병충해가 적어 농약 없이 재배할 수 있다. 경남 고성 송천 농장의 배용만씨도 참다래(키위) 밭에 한방 영양제를 준다. 당귀·계피·감초·생강·마늘 등을 발효시켰다. 배씨는 “산으름 열매를 따서 흑설탕에 넣고 6개월 정도 숙성시켜서 주면 가을철 참다래 당도가 올라간다”고 말했다. 배씨의 창고는 그가 만든 온갖 ‘영양제’들로 가득하다. 횟집에서 버리는 생선, 어부들이 골치 아파하는 불가사리도 그에겐 훌륭한 원료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농원을 운영하는 주재동씨가 친환경 딸기를 돌보고 있다. [사진 농협]

 친환경 농산물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08년 2조5000억원이던 시장 규모는 친환경 급식 도입 등으로 성장에 박차가 가해지면서 올해 매출 4조원을 바라본다. 전체 농산물 시장의 10%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시장이 커진 만큼 농가들도 경쟁적으로 ‘친환경 비법’을 쏟아내고 있다. 소나 돼지를 직접 키워 분뇨로 퇴비를 만들거나 청보리 등 다른 작물을 키워 땅힘을 기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과자·한약재·녹즙·불가사리 등 온갖 재료가 ‘실험’에 동원되는 것이다.

 사람처럼 ‘녹즙’을 건강음료로 마시는 채소들도 있다. 경북 포항의 최진석씨는 “미나리 녹즙과 쑥즙을 천연 미생물과 혼합해 부추에 뿌려주면 쑥쑥 자란다”고 말했다. 부추에 해를 끼치는 나방류는 천적인 거미가 해결해준다. 농약을 뿌리지 않다 보니 비닐하우스 안에 각종 거미가 자생한다. 땅힘을 돋우기 위해 지렁이를 풀어놓고 기른다. 충남 아산에서 유기농 오이를 키우는 김명래씨도 그을음병 등을 일으키는 진딧물을 천적인 진딧벌을 이용해 막는다. 김씨는 “원래는 진딧벌을 구입해 비닐하우스에 풀어놓았는데 환경이 깨끗하다 보니 진딧벌이 아예 하우스 안에서 생태계를 이뤄 더 구입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겨울철에도 비닐하우스에 난방을 하지 않는다. 탄탄하게 하우스를 짓고 열효율을 관리하는 것이 전부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뿐 아니라 기름 난방을 하면서 발생하는 대기오염까지 막아야 진짜 친환경이라는 것이다. 경기 양평 늘푸른농장의 김연순 대표는 달걀 노른자와 식용유, 비린내를 없애기 위한 커피까지 섞어 만든 특제약으로 벌레를 방지한다.

 각종 친환경 농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육기관도 있다. 경주환경농업교육원은 2년 과정의 농업마이스터대학을 포함해 2006년 이후 지난해까지 14만 명에게 친환경 농법을 전수했다. 친환경 농산물 유통도 다양해졌다. 충북 청원군 오창농협은 인터넷 사이트 ‘자연이랑(62life.com)’을 통해 SK그룹 임직원과 일반 소비자에게 친환경 농산물을 직거래로 판매한다. 친환경 농가들은 협업을 통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전국 친환경 농산물의 43.5%를 생산하는 각지 농협 등 약 170개 조합이 모인 전국친환경농업협의회(회장 박성직)가 생산·유통 개선책을 고민 중이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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