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공인 기업구조조정 전문가제 도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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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단연 구조조정이었다.

그래서 지난 3년간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위한 제도와 방법 그리고 구조조정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의 폭은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옛말이 생각날 정도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선 제도나 방법 측면을 보면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CRF.CRC.CR리츠 등 열개 이상의 새로운 기구와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산업발전법 등 많은 관계법령이 제정되거나 개정됐다.

이제 내년 중에 기존의 도산3법을 대체할 통합도산법이 제정된다면, 그야말로 제도에 관한 한 국제적 기준에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통합도산법은 미국의 도산 관련법인 11장과 유사한 것으로 청산에 비중이 실렸던 과거의 도산3법(화의.회사정리.파산법)과는 달리 신속한 기업회생에 중점을 두고 있어 기대가 크다.

무엇보다 법원의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해 파산과 회생의 여부를 가리고, 신속한 갱생을 위해 기존 경영진도 중용함으로써 부실기업의 도산신청에서부터 회생에 이르는 절차가 명료하고 신속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구조조정의 성공을 위해 제도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역시 인재양성이다.

그 일환으로 '공인 기업구조조정 전문가'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이는 미국에서 1993년 시작된 이른바 'CTP(Certified Turnaround Professional)'제도와 유사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이들을 통해 구조조정의 해법을 찾자는 것이 이 제도의 취지다.

미국 CTP는 5년 이상의 실무경험과 철저한 윤리의식을 지녀야 하고 업계 내 3인 이상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야만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후보자들은 고난도의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도덕적 자질을 재검증 받은 뒤에야 비로소 CTP로 공인받게 된다.

이들이야말로 구조조정과 기업회생에 관한 한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으며 기업 구조조정의 실행과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CTP는 변호사 못지 않은 명성을 쌓으며 구조조정의 마법사로서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도산처리 관련법은 채권자들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가급적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관할법원에서는 부도시점부터 구조조정의 실행 및 기업회생에 이르기까지 CTP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공인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제도가 정착되면 과거에 지적받았던 전문가의 부재나 이들의 도덕적 해이에 관한 문제들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병을 치료하려면 환자의 의지나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구조조정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 종사자와 이해 관계자들의 노력이다. 그러나 병을 치료하는 데는 주변에서 환자를 돌보는 전문의의 세심한 처방도 환자의 노력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의사만 잘 만나도 웬만한 병은 쉽게 고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업 구조조정도 같은 이치로 설명할 수 있다. 구조조정 전문회사(CRC)와 CTP 등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단계별로 적절한 처방을 집행한다면 구조조정 당사자들의 고통을 휠씬 덜 수 있다.

결국 구조조정을 이끌어가는 것은 합리적인 제도와 이를 실행하는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새해에는 통합도산법의 제정과 함께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CTP제도의 도입으로 우리의 현실에 맞는 상시(常時)구조조정체제가 정착될 것을 기대해 본다.

이영탁 <한국crc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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