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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다녀온 「엔지니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 젊은 「엔지니어」가 한달동안의 외국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다. 회사의 기술관계의 일로 바다건너 남쪽의 이웃나라를 시찰하고 돌아온 날의 일이다.
비행장에는 가족들과 동료들이 많이 마중을 나봤다. 그자리에 나온 동료들은 그날 하오에는 피곤할터이니 회사에 나올것 없이 오래간만에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잘 쉬라고 친절히 일러주고 헤어졌다.
이날하오 이 젊은 기사는 집에 들어와 여장을 풀자마자 낭군의 귀가를 손꼽아 기다리던 젊은 대학출신의 부인과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재롱을 부리는 딸을 데리고 제일 먼저 서울운동장 야구장에 나갔다.
원래 야구「팬」이기도 하지만, 그날 그의 발견음을 재촉한것은 , 어느 특별한 「팀」의 경기가 아니다. 자기의 부재중에 새로 설비가 완성된 야구장의 「나이터」시설을 한시바삐 봐야겠다는 충동이었다.
이튿날 아침 우리의 「엔지니어」는 평소보다더 일찍 직장에 나갔다. 그의 가방속에는 벌써 출장지의 「호텔」에서 미리 준비해두었던 보고서의 초안이 들어있었다. 이날아침 이 젊은이의 큰집 조반장 둘레에서는 그의 어제의 행동이 재미있는 밥상머리의 화제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오는 즉시로 회사에 나가 웃사람들에게 출장다녀온 인사를 차리지 않겠다는것이 좀 못마땅한것같고 또 걱정스럽기도 하다는 얘기였다. 초노이지만 여학교를 나온 이북도출신의 모친에게는 아들의 직장과 출세가 제일 중요한일로 생각되는 듯했다.
그뒤에서 찬을 날라오던 찬모가 이말을 듣더니 무심코 『아이참, 이상도 해. 노할머니댁에 인사를 다녀오지도 않고』라고 한마디 참견하였다.
공부는 없지만 한때는 시골에서 온전한 가정을 이뤄본 전력이있는 이남도출신의 중년과부에게는 주인집 도련님이 먼 외국에 갔다 돌아오는 길로 8순의 조모님에게 문안도 드리지 않고 그대신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야구구경을 갔다는 사실이 퍽 좋은 집안의 상도에 어긋난 일인듯 생각되었던 것같다.
이 밥상머리에 앉아있던 저「엔지니어」의 젊은부인은 묵묵히 이런 회화를 듣고 있었다.
행복스러운 미소를 만면에 띤채. 마치 세계아무데서나 소용이되는 값있는 기술을 가진 낭군이 가문이나 직장의 인사치례와 같은일에는 초연하고 다만 자기의기술에 긍지를 느끼고 그것의 향상에만 몰두하면서도 처자중심의 핵가족의 단란을 잊지않는데 대하여 무한한 자랑과 흐뭇함을 느끼는듯이.
이한빈<서울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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