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학비 받고 애들에게 “TV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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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민경(31·서울 마포)씨는 3개월 전부터 11개월 된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직장에 새로 나가게 되면서 아이를 맡길 곳이 필요해서다. 이씨는 처음엔 “나름 괜찮은 어린이집을 구했다”고 안도했다.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원장이 수시로 생일파티나 간식비 명목으로 입금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특별활동비라면서 10만원을 추가로 요구하기도 했다. “발육에 좋은 베이비 마사지를 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뒤늦게 24개월 미만 아이에게는 특별활동비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가 항의했지만 원장은 “우리 어린이집 다른 아이는 다 한다. 뒤처지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고 오히려 큰소리였다. 이씨는 “내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어린이집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며 “말은 무상보육이라지만 실제 부모 부담은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5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어린이집 4500여 곳을 조사한 결과 총 287곳에서 이 같은 위법행위가 발생했다. 이는 2011년(135곳)보다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적발 사례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불필요한 비용을 청구하는 경우다. 안모(36)씨는 “견학 간다기에 견학비까지 냈는데 알고 보니 어린이집에서 TV시청으로 때웠다”며 “우리 애가 과일을 많이 먹는다며 간식 값을 다른 아이보다 더 내게 했다”고 말했다.

 실제 다니지 않는 아이를 허위로 등록해 보조금을 타내는 경우도 많았다.

 또 이른바 ‘바지 원장’을 세워 운영비를 빼돌렸다 적발된 곳도 있다. 어린이집은 대표 한 명이 여러 곳을 운영할 수는 있지만 각각의 어린이집에는 모두 자격을 갖춘 원장을 고용해 해당 어린이집 관리와 회계 등을 독립적으로 맡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적발된 곳은 각각의 어린이집에 다른 원장이 있는 것처럼 해놓고 실제로는 대표 한 명이 모든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어린이집 한 곳의 간식을 산 후 똑같은 영수증을 여러 장 발급받아 다른 어린이집도 모두 간식을 구입한 것처럼 속이는 방식으로 이익을 취했다. 시간제 보육교사제를 악용하기도 했다. 한 어린이집은 정규교사가 4명 있다고 등록했지만 실제로는 2명만 고용했다. 나머지 2명은 시간제 교사로 채용해 국가에서 지급하는 보조금 일부만 제공했다.

 서울시는 올해 ‘어린이집 지도점검 계획’을 세워 철저한 관리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부모와 보육전문가 250명으로 구성한 모니터링단을 신설해 집중 점검에 나선다. 또 행정처분이 확정된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부모의 알 권리를 위해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령 개정을 보건복지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어린이집의 위반행위는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간다”며 “정부보조금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점검 인원도 함께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강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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